경제강대국 흥망사, 찰스 P. 킨들버거, 주경철 옮김, 까치, 1996 (2004)
[9. 지각생 독일]
(도제 독일) 1806년은 나폴레옹이 예나에서 프로이센을 패배시켰고, 그 결과 귀족들은 경제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패전이 신인들을 등장시키고 새로운 경제적 결의를 낳는다는 맨서 올슨의 설명에 부합되는 것이다.
(직인독일) 1848년은 유산된 부르주아 혁명의 해로, 프랑크푸르트에서 핵심내용이 바진 채 작성된 헌법은 프로이센 군주제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 실패했다.
(장인독일) 1871년에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또 프로이센의 주도 아래 제국이 형성되었다. 1913년은 제1차 세계대전 바로 전 해였다.
(빌헬름 칼텐슈타들러) 13세기까지 한자 동맹의 구성원들은 매우 활기차고 역동적인 사람들로서, 길드에 강제로 편입되기를 원치 않았고 따라서 자본집약적인 사업을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 14세기에는 이러한 태도가 바뀌어서 안전하게 부를 누리려는 욕구와 반자유주의적인 경향에 집착했다.
누구나 완벽한 정치가로 생각하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79년 "호밀과 철" 관세에 대한 의결을 끌어 낸 솜씨로 칭송받는데, 그것은 융커들이 도시와 산업을 모두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커들이 한 세대도 채 지나지 않아서 루르의 철강공업이 추구했던 전함건조사업을 지원하게 된 이유는 도시와 산업에 대한 증오가 영국에 대한 증오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지역과 달리 독일 내부적으로는 소상점주는 있었지만, 원거리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 원인 중 일부는 열악한 상태의 통신, 도로, 수상교통 그리고 내륙도시들이 부과하는 수많은 강상 통행세였다. .... 귀족과 부르주아는 상업을 천시하고, 특히 부르주아는 상인계급에서 제후에 의존하는 관료계급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적인물들이 즐겨하는 취미는 누가 최초인지를, 때로는 어느 정도로 앞선 것인지를 선언하는 것이다....독일은 1820년쯤에 기계주의를 향한 경로에서 최소한 반세기 정도 뒤져 있었다. ...외국 자본과 설비가 주도했지만, 독일은 20년 만에 50년 이상의 격차를 좁혔다. 문맥상으로 그 20년이 정확히 언제 끝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1850년대인 것으로 보인다....영국의 소규모 독립기업들과는 대조적으로 주도적인 독일 기업들은 규모가 크고 카르텔이나 수직적 통합으로 조직화되어 있었는데, 이는 ....영국의 기업계에서는 결여되어 있는 요소로 꼽은 것이다.
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사회계급간의 날카로운 대립으로 왜곡되었던 독일의 국가 생명주기를 더욱 변경시켰다. 생명주기 모델보다는 오히려 혁명과 붕괴를 고려하는 골드스톤의 모델에 가까와졌다. 프랑스 혁명이 포퓰리스트 나폴레옹을 낳은 것과 같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는 히틀러를 등장시켰다.
정치적 주류집단은 전쟁으로부터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살아 남았고, 그들 사이의 상호 반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1차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인플레이션에 대해....1) 노조와 산업계 모두 비타협적 태도를 보였다. 가령 하루 8시간 노동문제와 관련하여....2) 1871년 제국의 설립 때부터 시작된 독일 금융의 분권적인 성격은 전쟁기간 거의 내내 ...거의 변경되지 않았다.
히틀러의 대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원인으로 제시되어 - 베르사이유 조약, 인플레이션, 실업, 독일인의 특성 등이 대표적인데, 이것들은 히틀러의 등장을 너무 결정론적으로 보게 한다. - 마치 미지수보다 설명변수가 더 많은 방정식 같다.
1948년....화폐개혁은 가령 1920년대 초와 같은 시기(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행되었다면 그 시절의 인플레이션을 통제했을 수도 있는 기술적인 문제였는가? 화폐개혁이 성공한 것은 1920년대의 고착상황을 초래한 여러 이해집단들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었는가?
1989년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이 서독에 합병되자, 동방정책Ostpolitik이 압도적으로 최우선적인 것이 되었다. 이때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를 일대일의 비율로 교환한 것은 큰 실수였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재앙에 가까운 실수로서.....그런데 서독의 급속한 성장과 동독의 무기력, 게다가 그나마 활력적인 시민들의 대거 서방이주로 인해서 그 차이는 더욱 커졌다. 동독의 수입과 생활수준을 유지시켜주려고 했던 본 정부의 예산은 적자가 되었고, 연방은행은 물가상승을 우려하여 통화긴축 정책을 썼으며, 이것은 다시 동독만이 아니라 서독에서도 실업을 야기했다.
코카와 라우크는 둘 다 변화하는 세계 환경에서 독일이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것은 오직 생산성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노동시간은 주당 35시간 이상으로 올리고 휴가는 5주 이하로 줄여야 하리라고 주장했는데...아마도 독일 경제는 그 이전의 많은 국가들처럼 어느 정도 경직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10. 미국]
1776년부터 1976년까지 지난 두 세기 동안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벗어난 후 세계의 제반문제들로부터 비켜서 있기를 바라던 작은 나라로부터 출발하여 느리지만 확실히 세계문제에 개입하는 주도 세력이 되었다....
. 귀족계급이나 하층계급이 없었다. 즉 이나라는 시작부터 대부분이 중산층이었던 것이다.
. 광활한 땅은 높은 토지/노동 비율을 달성할 수 있었다. 노동자는 언제든지 일을 그만두고 서부로 떠나서 땅을 일굴 수 있었으므로 고임금이 가능했다. 그리고 노동력 절약의 혁신에 대한 강한 인센티브가 있었다.
. 19세기 중반의 대량 이민 (1846년 감자 기근 당시의 아일랜드인들, 몇 년 후의 독일인들 그리고 1880년대부터 유입된 남동부 유럽인들) 미국을 무제한적인 토지가 공급되는 발전국가로부터 노동이 무제한적으로 공급되는 발전국가로 전환시켰다.
1945년 혹은 1950년대부터 대략 4반세기 동안 지속된 미국의 황금기는...1950년대의 큰 격차는 다음 10년 동안 좁혀지기 시작했다....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생산성의 둔화, 저축의 감소, 연방예산과 국제 경상수지 계정의 쌍동이 적자, 다니엘 벨이 "탈산업국가"라고 일컬었던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전환, 그리고 특히 금융에의 몰두이다. 이것은 재화보다는 자산의 판매와 구매, 그리고 제조업에서 신상품과 신공정을 개발하는 대신에 새로운 금융수단을 개발하거나 옛것을 부활시키는 데에 전념하는 것이다.
대체로 1964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된 미국의 생산성 쇠퇴가 다시 역전되고 있다는 가능성은 일단 제쳐두고, 그것에 선행하는 쇠퇴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첫째로, 쇠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었다....1960년대 이후의 생산성 하락에 대한 설명들로는 부실경영과 더불어 OPEC이 주도한 1973년 과 1979년의 유가상승과 같은 외부적인 충격들, 또 기업들로 하여금 자신의 연구 개발비를 줄이게 했던 1970년대의 폭발적인 인플레이션, 그리고 특히 장기보다는 단기에, 재화나 서비스보다는 자산의 매매에 전념하는 금융에만 매달리는 미국의 태도도 포함된다.
미국 국내자본의 투자 둔화는 생산성 쇠퇴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된다....현재보다 미래를 먼저 생각하곤 했던 나라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저소득층에서 저축이 쇠퇴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인플레이션시기, 특히 대학 교육과 의료비용이 증가하는 시대의 생활고의 결과이다.
(미셸 슈발리에는) 미국인들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때에는 첫째로 술집이 딸린 여관을 짓고, 다음으로는 우체국과 집 몇 채, 교회, 학교, 인쇄소를 짓고, 그리고 나서는 은행을 지었다...(고 1834년에 기록했다. 아직도 곰과 방울뱀이 어슬렁거리던 그 당시에 말이다.)
네델란드에 대한 연구에서, 클라인은 금융이 최악의 직종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말은 도덕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사회불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과 기업가들이 은행가나 증권 거래인들만큼의 규모로 돈을 벌기란 어렵다.
더구나 소득과 부에 몰두함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도박이, 다른 한편으로 사기와 부정행위가 판치게 되었다...사기의 양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나 버블이 일어날 때처럼 위험을 감수하려는 유혹이 널리 퍼지는 시기에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이미 위험을 감수했다가 그 위험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실을 보상하고 잘못을 숨기고자 사기를 치는 경우이다. .... (고인이 된 알프레드 허쉬는) 미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가 도덕자본 (도덕적 유산)을 소진시키지 않았는지 질문을 제기했다.
나는 쇠퇴의 징후를 덧붙이고자 한다. 보호관세와 보조금에 대한 요구, 정부의 호의를 위해서 경쟁하는 이익집단들의 강력한 로비, 생산성 성장의 쇠퇴, 낮은 저축률과 높은 수준의 국가, 기업, 가계의 부채, 그리고 금융, 산업, 스포츠, 연예 부문의 스타들의 소득 증대와 하층의 실질 소득 감소, 도박의 증가 그리고 비록 자료는 빈약하지만 사무직 범죄의 증가, 국제연합의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부채증가에서부터 ...분담금 요구 증가 등 국제영역에서의 책임감의 약화, 그 외의 여러 가지 것을 고려할 때, 나는 비관주의자들의 편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