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1 일상생활의 구조 상, 주경철 옮김, 까치
머리말
경제학자들의 경우 경제를 하나의 동질적인 실체로 보기 때문에 주변 배경으로부터 경제만을 추출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며, 또 수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으므로, 그렇게 추출해낸 경제현상을 측정할 수 있고 또 측정해야 한다고 믿는다....전前산업화 시기의 유럽의 발전이란 인류역사를 둘로 갈라놓는 산업혁명이 도래하기 전까지의, 점진적으로 시장, 기업, 자본주의적 투자라는 합리성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여기서의 진화과정이란 하나라기 보다는 차라리 서로 대립되고 어깨를 겨루며 심지어 서로 상반되기 까지 하는 '여러 개'의 진화과정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경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그중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묘사하기 좋은 것은 소위 시장경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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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한편에 불투명한 영역,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 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이 폭 넓은 영역을 나는, 더 알맞은 이름이 없어서, "물질생활 la vie materielle" 혹은 "물질 문명 la civilisation meterielle"이라고 명명했다.... 이 하부경제 infra-economi, 즉 경제활동이 덜 형식적이며, 자급자족이거나 아주 좁은 범위내에서 재화와 용역을 물물교환하는 이 또 다른 절반을 가리키는 데 더 적절한 명칭을 발견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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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시장이라는 광범한 층의 밑이 아니라 그 '위'로 활동적인 사회적 위계가 높이 발달해 있다. 이러한 위계조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환과정을 왜곡시키며 기존 질서를 교란시킨다. ...시장경제의 투명성 위에 위치하면서 그 시장경제에 대해서 일종의 상방 한계를 이루는 이 두번째의 불투명한 영역은 나에게는 특히 다름아닌 자본주의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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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세기 동안, 혹은 그 이전에도 시장경제는 구속력을 가진 질서였으며 다른 모든 구속력을 가진 질서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위로나 밑으로 대립과 대응력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이다....시장경제는 여기에서도 (똑 같은 틀을 통해 현재의 사회가 돌아가는) 언제나 처럼 광범한 정도의 교환을 좌우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통계에 잡히는 만큼에서만' 그러하다. 시장경제의 가장 뚜렷한 표시인 경쟁이 현재의 모든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에도 한편에서는 또다른 세계가 있어서 그곳에 특별한 자본주의, 즉 내 생각에는 '진정한' 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시장의 밑에서 혹은 시장과 동떨어져서 행해지는 이러한 (불황의 과정에서 비시장경제가 번성하는) 활동의 층은 ... 적어도 GNP의 30-40 퍼센트를 차지하면서도 모든 통계에서 빠져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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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 삼분법적 도식은 내가 의도적으로 모든 이론을 배제하고 단지 구체적인 관찰과 비교사의 방법으로만 이 책을 써 갈 때....) 우리가 파악한 광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삶 그 자체의 표시인 폭넓음, 복잡함, 다양함을 살펴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자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의도였다.
서론
보통 서로 관련 없이 고립되어 있고 전통적인 역사서술에서는 주변적으로 발전해온 準역사적인 parahistorique 논구들-인구, 식량, 의복, 주거, 기술, 화폐, 도시-이 군색하게 모여 있다는 점 때문에 그 어려움이 (복잡함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기본적으로 전산업화 시기의 경제활동 영역을 포괄하고 그것을 전체 두께 속에서 파악하기 위해서이다....현 시대를 포함하여 각 시대마다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 다시 설명하면 노력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달할 수 있는 것과, 인간에게 아예 거부된 채 남아 있는 것 사이에 한계가 그어져 있었다....(육상수송에서의 완만함은) 철도 혁명의 전야인 1830년경에 가서야 일반화되었다. 그때 가서야 도로교통이 증대되었고 규칙적으로 되었으며 더욱 빨라졌는가하면, 나아가서 '민주화되었다.' 즉 그때 가서야 가능성의 한계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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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영역은 단지 위로부터만 제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환의 움직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생산의 "또 다른 절반"을 구성하는 큰 덩어리 때문에 밑으로부터도 역시 제한된다. 도처에 편재하고 침투하며 반복되는 이 물질생활은 일상사 routine라는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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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 civilisation materielle과 공존하기도 하고 교란시키기도 하며, 또 물질문명과 모순됨으로써 오히려 물질문명을 설명해주는 경제문명 civilisation economique을 물질문명과 동시에 소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둘 사이에 경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매우 큰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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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생활과 시장 혹은 경제라는) 상층과 하층의 공존은 역사가에게 계몽적인 변증법을 요구한다. ....신문의 잡보면faits divers의 일상사는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일반성 혹은 구조가 된다. 그것은 사회의 각층에 침투하여 영구히 반복되는 존재양식, 행동양식을 특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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