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1 일상생활의 구조 상, 주경철 옮김, 까치
제1장 수數의 무게
<기후>
(지리적 콩종크튀르의 동시성의) 원인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인 해답은 하나 밖에 없다. 기후의 변화가 그것이다. (50쪽)...그런데 15-18세기 동안의 세계는 80-90 퍼센트의 사람들이 땅으로부터 얻어내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농업사회였다. 수확의 리듬, 품질, 그 부족함 등은 모든 물질 생활을 좌우했다. 그 결과는 나무테에든 인간의 육신에든 깊은 상처처럼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51쪽)...(중국에서의 17세기 중반의 자연재해로 중국 내지에서의 농민 반란이) 이 모든 것이 물질생활의 변동에 어떤 보충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아마도' 그 동시성을 설명해줄지 모른다. 이와 같은 세계의 물질적인 통합성, 그리고 인류의 차원에서 생물학적 역사의 일반화의 가능성은 유럽의 신항로 발견, 산업혁명, 경제의 상호침투 이전에 이미 최초의 전全지구적인 단일성을 부여했을 수 있다. (52쪽)
기후의 악화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면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살고 "서구의 식량 공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온대 유럽지역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아직 극히 부분적인 연구에 머물러 있는 현상태에서는 일반화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개진될 대답들을 너무 많이 예단하지는 말자. 그리고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이 원래 얼마나 허약한가를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인간에게 호의적이든 아니든 "달력"은 인간의 지배자이다. (53쪽)
<인구밀도>
사람들이 거주하는 세계, 즉 외쿠메네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보다 부조리할 정도로 작아서 비대칭을 이룬다는 이 이미지는 다시금 강조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어서, 때로는 소홀함으로 인하여, 또는 끊임없는 역사의 힘의 연쇄가 이미 그런 방향으로 결정해버려서 인간은 지구의 9/10를 비워두고 있다. ...얼핏 보면 과거에는 인구밀도가 낮았으므로 1400-1800년 사이에 문명을 이룰 정도로 진짜 조밀한 인구집단은 어디에도 없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리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오늘날과 같은 구분, 똑 같은 비대칭이 이 세상을 "무겁고" 좁은 지역과 넓고 텅 비어서 썰렁한 지역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63쪽)
우리는 정확한 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문화의 경계는 수세기가 지나도록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세대를 내려오면서 이전에 거두었던 성공의 덫에 갇힌 채 결국 자신의 경험의 틀 속에서만 기꺼이 살려고 하게 마련이다.
민속학자 고든 휴즈가 작성한 1500년경의 세계지도는(64쪽)...이 13개 문명은 세계적인 규모에서 구대륙 전체에 걸친 길고 가는 리본 모양을 이룬다. 이것은 우물과 경작지와 조밀한 인구와 또 가능한 한 가장 탄탄하게 운영되는 공간을 나타낸다. (65쪽)
이것은 중요한 문턱점이 된다. 유럽에서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700만 명의 인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지만, 세계의 차원에서 볼 때 문명이 발달할 수 있을 정도의 인구밀도는 적어도 1 제곱킬로미터당 30명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부유하고 이미 "산업화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는 인구의 무거운 부담을 잘 버텨내서 자신의 영토내에 사람들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인구 과잉은 사람의 숫자만이 아니라 동시에 가용자원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68쪽)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듯이 인구 압력이 있을 때에는 음식을 바꾸거나 (특히 육류와 빵 사이의 변화를 초래한다), 농업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아니면 이민에 크게 의존한다. (69쪽)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도시 인구와 농촌 인구 사이의 비율이며 또 인문지리학적 규준에 따른 시골 인구집단의 형태이다.(69쪽)...그런데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마을이 이토록 작다는 것이 이곳 농민의 운명을 결정한 중요한 원인이 아니겠는가? 커다란 공동체를 이웃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이런 마을들은 영주들에 맞서서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70쪽)
고든 휴즈의 지도가 보여주는 다른 사실들.
적어도 다음 세 가지의 사실을 들 수 있다.
1. "문화" (인류의 첫번째 성공)와 "문명"(인류의 두번째 성공)이 자리잡은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70쪽) ...
2. 이 지도를 보면 유럽인이 승리를 거두기 이전에 벌써 수세기 전 혹은 수천년 전부터 전세계가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온 집"인 이 세계는 지리상의 발견 이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발견되어" 있었다. (71쪽)
유럽이 세계를 재발견했다고 해도 그것은 대개 다른 곳 사람들의 눈과 다리와 지능의 덕을 입어 행한 것이다. 유럽인들이 몸소 성공한 것은 대서양의 발견이다....
3. 마지막으로 인구가 조밀한 좁은 지역들은 늘 동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73쪽)
문명만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요 세상의 소금인 것은 아니다. 문명 밖에, 때로는 문명권으로 침투해 들어오거나 문명권을 포위하는 곳에 원시적 삶이 전개되는 광대한 영역이 펼쳐져 있다. (74쪽)...진짜 야만족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조밀하게 모여사는 지역의 경계 밖에서, 가혹한 환경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었다....가장 극빈 상태에 있는 종족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넓은 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금 달리 표현하면, 넓기는 하지만 인간에게 불리한 조건을 가진 이런 지역에서는 뿌리식물과 줄기식물을 캐먹거나 들짐승을 덫으로 잡는 등의 원시적인 생활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 땅이 지력이 낮고 이용가치가 없어 보여 사람이 희귀해지면 야생 짐승들이 증가한다. (76쪽)
...18세기말까지도 아직 원시적인 동물의 세계가 광대한 공간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 천국의 한가운데에 인간이 나타난 것이 새로운 비극이었다. (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