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내 청춘의 한 때, 흑백다방 앞에서......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4. 7. 4. 07:10
내 청춘의 한 때, 흑백다방 앞에서. 
 
정일근 시인의 같은 시제목도 그러하려니와,
나 역시도 세부묘사의 진실성에 목 말라했다.
여기 화가 유택렬  선생의  그 곳에 서면
항상 붓질이 서툴렀던 고등학교 미술반  생활도  상기되고,
철학과 친구 녀석과 설익은 '부분과 전체'를 논했던 시간과
그런 뒤면 중앙시장 신생우동집에서 낮술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 내 청춘의 비망록, 흑백다방.
낮게 깔리던 클래식처럼....

 

 

 

 

 

 

흑백 다방 
 
                                                         정일근 시인
  
 
오래된 시집을 읽다, 누군가 그어준 붉은 밑줄을 만나 
 
그대도 함께 가슴뜨거워진다면 
 
흑백다방, 스무살 내 상처의 비망록에 밑줄 그어진 
 
그곳도 그러하리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를 들을 때마다 
 
4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쿵쿵쿵 쿵, 운명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수갑을 차고 유폐될 껏 같았던 
 
불온한 스무살을 나는 살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알렉상드리아 항구로 가는 밀항선을 타거나 
 
희망봉을 돌아가는 배의 삼등 갑판원을 꿈꾸었던 날들이 내게 있었으니 
 
  
 
진해의 모든 길들이 모여들고 
 
모여들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중원로터리에서 
 
갈 길을 잃은 뒤축 구겨진 신발을 등대처럼 받아주던,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을 터뜨려 
 
내가 숨쉬기 위해 숨어들던 그 곳. 
 
  
 
나는 그 곳에서 시인을 비로소 시인을 꿈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였던 흑백다방이여 
 
  
 
memento mori* 
 
세상의 화려한 빛들도 영원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느니 
 
영혼의 그릇에 너는 무슨 색깔과 향기를 담으려 하느냐, 
 
나를 위무하며 가르쳤으니 
 
  
 
그 자리 그 색깔 그 향기로 
 
사진첩 속의 흑백 사진처럼 오래도록 남아있는 
 
since 1955 흑백다방 
 
진해시 대천동 2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