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가난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를 살펴보기에는 나의 시각이 편협할 수 있겠지만,
방글라데시의 가난을 두고 하는 얘기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인프라를 초과하는 인구의 과밀,
불공정한 관료와 정치체제,
국제적 수탈구조,
반복되는 자연재해 등이다.
이미 자본의 욕망에 잠겨버린 사람들은 자동차나 릭샤(力車)를 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숫자가 도로나 인프라의 허용을 초과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하기야 어딘들 그런 재앙이 없으랴만, 바로 그런 재앙을 방글라데시에서 본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서민적 ? 욕망 이전에 - 양반계급이나 권력의 자기 재생산의 기반을 위해 -
인프라가 가외 효과로 구축되긴 하였지만.
한국의 성장 동력이 다했다라는 나의 판단은 여기 방글라데시를 쳐다보면서 더욱 또렷해진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관료제가 더욱 단단하게 다져지면서
불공정과 불평등에 익숙해져간 무력감이 여기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 분업이라는 지역적 산업분배를 통한 공산품의 가격 조정은
저임금의 구조 속에 내몰린 민중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한다.
더하여 갠지스강의 하류인 방글라데시의 파드마 강의 벵골 삼각주는
물산이 넉넉치 못하다. 쌀을 제외하고는.
원래가 저지대인 이유로 자연재해를 막는데도 물자가 필요하다. 흙이나 모래가 그렇다.
이미 해수면 근방에 있는 땅에서 강모래를 퍼올려 겨우 뚝방을 만든 형국이니
흙산이 흔한 우리로서는 흔히 생각할 수 없는 한계로 다가온다.
우기철이되어 상당 부분 잠겨버리면
삶의 터전은 시간의 역사 뿐 아니라 공간의 역사를 잃게된다.
둘러보아도 해법이 보이질 않는다.
해법이란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라서,
수용의 범위를 넘어서면 그 수용 자체를 건드려야 하지
수용할 그릇을 건드리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하기야 간단한 해답이 있다면야 지금 이러고 있겠는가?
높은 문맹률은 인구의 과다를 떠나서 문제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글자의 생김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본다면 나의 좁은 시각일지도 모른다.
(한자가 오히려 복잡다단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70년대의 군부독재하에서의 경제관료가 이런 고민을 하였을라나?
여기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의 한 시절을 생각한다. 속까지는 변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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