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단상-2-살인적이라는 의미는 필요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0. 9. 19. 14:44

여기 최저임금이 약 8000 타카, 우리돈 12만원이다. 경제성장률은 7% 이상 기록되고 있고 물가 상승률은 약 5~6% 수준이다.

2018년과 비교하여 이 최저임금은 2019년에 50% 높게 결정된 것이라 한다. 물론 노동자의 요구는 1만6천타가, 21만원 선이다. 

이같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방글라데시의 봉제산업이 국제적 분업이란 아름다운 포장 뒤에 국가 수출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어제 식기류 (냄비2, 팬 2, 웤 2, 칼 4, 기타 주방용품 몇 가지)를 사는데 약 3만 타카를 지출하였다. 간단한 4인 구성의 한국식료품 (건어물류)를 사는데 다시 3만 타카를 지출하였다. 최저임금의 7배 이상의 지출이다. 아, 전기 밥솥을 빼먹었다. 그 역시 1만 3천 타카를 주었다.

 

살인적이란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케한다. 

한국음식이야 그렇다고 쳐도 기본적인 주방용품의 가격은 최저임금의 4배에 육박한다. 

필요를 절반으로 줄여도 2배 이상이다. 

 

모르긴해도 이러한 물가는 높은 관세와 독점, 유통구조, 건물 임대료 등에 기인할 것이다. 

노동과 무관하게 이윤을 취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우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살인적이라는 의미를 다시 묻게된다.

필요를 소유하지 못할 때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한국의 물가구조(혹은 재정지원 정책들이)가 노동자의 저임금을 지속시키기 위함이라는 나의 의심은 여기에서는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 맞지 않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런 물가구조와 국자재정지출이 누군가의 계급적 지위를 더욱 키우거나 단단히 하는데 쓰인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한국의 그러한 구조 역시 그 결과물은 여기 방글라데시와 동일할 것이다.

 

사진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저 까만 선들이 인터넷 선이다. 서민의 발?이라는 릭샤가 보인다. 인프라를 초과하는 과밀은 저 인터넷 선에도 확인할 수 있다. 생활의 조건을 앞서가는 문명의 이기는 욕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매몰되어 서서히 쓰러지는 것들이 사람일 때는 함부로 무어라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