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까지 가서 마애불을 보지 못하였다면, 나는 참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천황사지에서 구름다리를 지나서 천황봉을 찍고 구정봉을 지나 도갑사로 내려가는 산행길에서.
구정봉 아래에서 샛길로 500m라는 거리는 그리 멀게 느껴지는 거리는 아니지만, 일행들과의 시간차이는 왕복 1km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 마애불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다른 날을 기약해야 할 것이고,
그 다른 날은 언제고 내 생애에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해서 도갑사 절집아래 버스에서 기다릴 일행에게는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조금은 욕먹을 생각을 하고 용암사터의 마애불을 찾아 나섰다.
비례가 맞지 않음은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때문인가?, 싶지만 오히려 보는 데 부담이 적었다.
선명한 조각에서 연꽃은 피어오르고 덩쿨은 청청하였다.
배꼽께에 놓인 왼손에는 약병 쯤이 들려 있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오른 손은 악을 누르는 의지와 근엄함이 선명하였다.
산행길 여기저기 곧게 세워진 바위절벽이 많아, 저쯤이면 마애불 한 자락을 새겨 공덕을 쌓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단 오늘의 나 만이 아니질 않은가.
인적이 뜸하여 굿하기에 딱 좋은 위치라는 생각을 같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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