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알지,공해가 심하다고 소문난 여천(麗川-이제는 여수로 바뀌었지만) 하고도 볕이 좋을대로 좋은 화양(華陽)면의 배낭기미(梨木)는 특별히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의 언저리에는 항상 촉촉한 눈물 방울이 묻어나는 법이라서, 그 마을 이목리를 두고도 이같은 법칙은 비켜가질 않는다.
녹음, 그 푸르른 여름날 내가 찾은 이목리는 의외의 장소였다. "의외"라고 한 말은 잠시 설명을 해둘 필요가 있겠다. 무작정 떠나는 길이라서, 그날도 예외없이 화양면 쪽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낡은 버스에는 운전 기사 한 사람만 덜렁 타고 있던 터였다. "아저씨, 종점까지 갑시다",며 택시 타드끼 올라탄 것도 그러려니와, 무작정 내린 곳이 바로 이목리였다. 의외 우리 삶의 한 부분은 그러한 의외를 이름을 빌어 나타나는 필연의 한 조각인 것을.
정이 들기는 쉬워도 떼기는 어렵다던가. 내가 다시 찾은 이목리는 겨울 어느날이었다. 드물게 남도지방의 끄트머리에도 눈발 하얗게 날리던 그 안날 쯤으로 기억된다. 볕은 그 이름에 값하여 매우 좋았고,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의 손길이 느리게나마 언덕 위 마늘 밭뙈기를 훑고 있었다. 흡사 세월같은 흐름으로 . 이목리, 최근까지 원전건설 후보지였고, 주민들의 반대 속에서도 여전히 원전 건설 예정지는 바뀌지 않을 듯하다. 나는 그 마을의 아름다운 이름 앞에서 다래끼로 뚱 부은 눈알같은 저주를 떠올리는 못된 생각을 하였다. 모든 힘겨운 일들은 겹겹이 오는 법이라서
배낭기미 2
눈썹 짙은 해안선
둥둥 논 밭 위으로 뜬 길
마을 내려다보는 갈색 옅은 봉분 둘
얘기가 길어지나
바람소리 잦다
안돼 안돼
핵발전소 결사 반대!
배낭기미 梨木里 낮은 블록 담장
기대어 퍼렁퍼렁
감기든 아이들 콧물 속에
저 또한 목청을 높이건만
구멍난 하늘을 이고 낡아버린
축사[畜舍] 뒤편 겨울 볕
암소 한 마리
네 느릿한 걸음으로도 알거니
언덕 위 측백나무
소금 바람을 터억하니 버티면
마늘밭 푸른 기운에
허리 펼 날 올 텐가
싶어 하늘 한 번 더 본다.
벌써 1년 전인가, 기억해내자면 이제 쉽지 않지만, 고향이 아닌 곳에 대하여 가지는 애착은 조금 뒤숭스런데가 있다. 이목 초등학교, 하얀 쪽동백 꽃잎새같은 백엽상과 턱도 없이 높은 곳에 매달린 풍향계의 수탉, 자라다 밟힌 잔디까지도 모두 그리움의 색채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요컨데 나는 그 못난 동네를 사랑하고 만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나의 발길을 그리로 돌리게 하고야 말 말굽자석 같은 곳, 그리운 언덕의 이름은 배낭기미라는 곳이다. 바다가 옆에서 말없이 지켜주고, 연이은 들판에서 나락이 넘실대는 곳,
벗이여,
"잘가라 20세기여"라고 말하기 전에, 그 20세기의 한 장(章)에서 한 발자국 비켜서서, 있는 듯 없는 듯 작은 마을 이목리에서, 딱히 거기가 아니라도 좋을 어디에서나, 가벼이 술추렴이나 하지 않으련. 바다가 손사래쳐 부르는 곳, 바지락 꼼지락대는 곳에서.
정작 찾아야 할 것은 우리 바로 옆에서 힙겹게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곧잘 하게 되지만, 벗이여, 잔치는 끝나지 않았으므로. 누군가 말했던가? 언제 잔치가 시작이나 한 적이 있느냐고.
餘滴
남도의 한 자락을 밟으며 절집을 찾아 다니던 날의 기록을 이렇게 남겨 봅니다. 꿈이야 예전의 뒷동산, 언덕빼기에서 삘기풀 씹으며 항시 그 자리지만, 살아 있음으로하여 마늘 쫑 송송 뜯어내어 고추장에 찍어먹는 날도 보게 되나 봅니다. 隔阻하다 하던가요, 오랜 동안 소식 없었던 사내 하나.
벗님네들께 소식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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