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동자바섬의 끌라파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02. 2. 17. 01:29

 

사탕수수 푸른 줄기대가 빗방울 속에서 환하다.

나는 끝내 눈길을 떼지 못한다

 

세상은 저리 푸르고, 풀빛은 좋은데, 볕 아래의 사람들은 거무티티하다.

 

새장 속의 새들은 저들끼리 통신을 한다. 사람들 만이 가끔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오히려 우리가 머물다 가는 이 곳이, 외로움에 지쳐 잠들어 버리는 이 곳이 삶의 한자락을 끊어 신발을 삼고, 허기진 속을 길가의 뭇 열매들로 채우는 이들, 그 들과 함께 보낸 내 서른 다섯의 나날이 그립다 못해 아쉽다.

 

"빠시르 뿌디" 라고 하면 "하얀 모래사장" 이란 뜻이 되는데 하얀 모래가 그립다. 나는 바다의 한쪽을 삼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살아온 셈이다. 그들은 그 바다와 모래를 그저 그렇게 놓여있는 풍경의 한쪽을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동 자바 섬의 끌라파 1

       - 발바닥

 

 

산 자들의 집들이 연해 있는 도로변

간간이 죽은 이들의 방()이 함께 있습니다

자바 섬의 동쪽 [시투본도]라는 작은 마을의 일입니다

 

발바닥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제 흙 속으로 돌아갈 이를 두고

눈물 흘리는 법이 없는 것은

더하여 남은 일이 없기 때문일까요

 

사람 사는 일이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 해 봅니다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잠을 자고

그런 것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풀처럼 바람처럼 때마다 나리는 비처럼 그렇게

즐거이 목숨 이어가는 때문입니다

바쁠 것도 없이 급할 것도 없이

들판 생긴 대로 살아가는

 

저 사탕수수 같은 생명들

누가 미개와 가난을 이야기합니까

끌라파 야자나무가 저리 푸른데

조롱조롱 덜 여문 끌라파로

태어나 볕 속에 함께 익어가는 저들을 두고

 

익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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