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참호에 갇힌 1차세계 대전 - 참호에 처박힌 아군과 적군은 둘 다 가엾은 존재들이었고 그게 사태의 본질이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0. 6. 28. 21:15

참호에 갇힌 제1차 - 세계대전 트렌치코트에 낭만은 없었다, 존 엘리스, 정병선 역, 마티

 

 

1부 땅속의 일상

 

결국, 독일군은 단지 자신들이 머무러던 곳을 지키기 위해 땅을 팠다. 이 전선을 돌파할 수 없음을 이내 인식한 연합군도 마찬가지로 반영구적인 토루 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최후의 결정적 돌파 작전을 개시하기 위한 출발선 이상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14쪽)

 

(참호는) 그야 말로 진흙바다다. 심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응급치료소로 몸을 질질 끌고 가다가 빠져죽는다. 진흙이 가장 혹독한 시련이다. 흙이 들어간 탄약통과 라이플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병사들은 사격을 하려고 총에 오줌을 갈겼다. (63쪽)

 

다시 말해 사상자의 거의 절반이 참호의 끔찍한 조건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질병으로 고통 받았다는 것이다. (영국의 통계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사이에 서부전선에서 전투 사상자는 269만명이었고, 질병과 감염으로 쓰러진 사상자는 353만명이었다. (80쪽)

 

제2부 전투의 실상

 

(최고 사령부의 장군들) 그들 대다수가 현대전에 관해 숙고를 거듭했고, 자신들이 과학적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장을 지배한 새로운 기술을 완전히 오판했다. 

세기의 전환기에 유럽의 장교 집단 사이에 만연했던 계급제도의 절대적 중요성과 연공서열에 대한 경직된 의존성으로 이런 맹목적 무지를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최고 사령부는 귀족들의 소굴이었다.... 이들은 산업혁명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흔히 소외되었던 계급출신이다.  (112쪽)

 

그들은 기술혁명으로 도래한 상황에 대처하는 최상의 수단으로 보병과 기병을 숭배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많은 군사저술이 이루어졌지만, 대부분이 계속해서 일종의 군사적 '정신주의'만을 강조했다. 물질적 힘의 잠재력은 무시한 채 인간의 능력만을 끊임없이 강조했던 것이다. (114쪽)

 

영국의 보병수칙은 공격의 탁월한 미덕과 궁극적 승리에 대한 불가사의한 신념을 표현하는 상투어로 가득 차 있었다. ...(118쪽)

 

1차 세계 대전의 기본전술개념은 단순하다. 가장 유효한 군사 기술은 공격이고, 그 공격에서 가장 유용한 무기는 부대원들의 사기이자 결의에 찬 돌격이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초기의 공세는 끔찍하리만치 유혈낭자했다. ...

요점은 단순하지만 흔히 간과된다. 지휘관은 적당한 전술을 만들어내기 전에 먼저 물리적 세력 균형의 본질을 정확히 평가해야만 했다. (121쪽)....맥심 기관총의 사계 너머로 이미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살펴볼 수 있었던 독일의 기관총 사수는 적병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그들의 사기를 측은하게 여겼을 가능성이 더 컸다. (112쪽)

 

모든 병사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강렬한 두려움과 맞서 싸웠고, 거의 모두 승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료들에게 겁쟁이로 낙인찍히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전투는 각자의 내부에서 벌어졌지만 집합의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135쪽)

 

3부 고향에서 온 편지

 

영국군의 경우 사태가 이렇게 된 이유는 식량을 운반할 선박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17~1918년 겨울에는 '더 적게 먹음으로써 선적량을 줄이자'는 구호와 함께 공식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이 구호는 어휘를 부적절하게 선택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그래서 곧 '덜 먹고 배설량도 줄이자'는 구호로 바뀌었다. (189쪽)

 

참호에서 놀랄만한 수준으로 (음식물을 허물없이 나누었던) 전우애가 발휘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훨씬 더 실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우리는 병사들이 얼마나 짐에 허덕였는지를 이미 살펴보았다. 먹으면 사라지게 될 음식물을 메고 다니기를 지긋지긋해 했다는 것에 놀랄 필요는 전혀없다. (196쪽)

 

찰스 캘링턴은 이렇게 썼다.

[세월이 흘렀고] 이제 24시간 연속포격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다면 당연히 96시간 휴식이 갖는 의미도 모를 수 밖에 없다. 플랑드르의 진흙받ㅌ에서 소나기에 흠뻑 젖거나 꽁꽁 얼어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딱딱한 바닥에 깔린 물기 없는 담요가 주는 기쁨을 누가 알겠는가? 

프랑스의 보병장료 폴 랭태는 아주 드물게 찾아왔던 순간적인 동물적 만족상태를 이렇게 요약했다.

삶을 빼앗긴 사람은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게 된다. 잠시라도 위험에서 멀리 놓여나면 어찌나 즐거운지 온몸이 나른하게 이완되고 살아 있다는 달콤한 만족감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하게 만끽하는 것이다. (234쪽)

 

4부 금지된 우정

 

그러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해야만 한다고 강박감을 느꼈던 것은 장교들만이 아니었다. 사립중학교의 교육이 아주 정교하게 이런 관념을 주조해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반 사병들도 모호한 의무감에 압박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240쪽)

 

병사들은 독일군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자신의 원시적인 살인충동을 확인했다. 하여튼 병사들은 적군을 보거나 조우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광포한 행동도 곧 잦아들어 상대편을 마지못해 공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마리-폴-랭보는 이렇게 썼다. "참호에 처박힌 프랑스 군인과 독일 군인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둘 다 가엾은 존재들이고, 그게 사태의 본질이다. " (246쪽)

 

이런 비공식 휴전이 자주 발생한 또 다른 경우는 공격전 이후 부상자와 사망자를 회수해 갈 때였다. (248쪽)

 

모든 것은 탁한 갈색의 단조로움이었고

그곳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것은 피 뿐이었다. (257쪽)

 

R.H 모트럼은 이프로 3차 전추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판단했다. 

공세는 참혹한 실패로 마감되었다. 그러나 그 영향은 항구적이었다. 이때부터 병사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챙겨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이 싹텄다. 1918년 말에는 총격전이 거의 없었다. 다시 몇 주 후에 최전선에서 임무 수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생략하므로써 전쟁이 중단되었다. 마침내 휴전이 성립됐다.  (260쪽)

 

실제 탈영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수준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부분에서 대서양의 존재가 탈영을 단념시켰기 때문이다. (272쪽)

 

프레더릭 매닝은 장병ㄷ들의 상호애정 이면에 놓인 필사적인 충동을 감동적으로 묘파하고 있다. 

이 명백하게 야만적이고 잔혹한 세계가 서로를 위로하게 했고 용기를 북돋워줬으며, 운명과 타협하도록 만들었다. 인생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감동적인 빈틈없는 다정함으로 말이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시신조차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전선의 시체는 전쟁의 단순한 비품일 분이었다....그들은 스스로와 동료를 믿었다. (290쪽)

 

그러나 사람들이 이 열정적인 형제애에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고, 또 얼마나 고양되었든 간에 참호전 Trench Warfare는 비할 바 없는 잔인함과 고통의 전쟁이었다. ...병사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별로 믿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싸웠다. (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