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탈근대군주론, 존 산본마쓰 지음 - 대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소비주의이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1. 6. 16. 00:18

탈근대군주론, 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 갈무리

 

한국어판 서문

 

그렇지만 우리의 위기 국면이 독특한 것은, 지구의 문화, 경제적 통합이 모든 차원 곧 지구적/지역적/국가적/국지적/생태적 차원에서 동시에 위기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미국식 소비자 자본주의라는 단일한 발전모델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주변부 지역의 문화적 조건이 이른바 '중심부'의 조건들과 '가족적' 유사성을 띠고 있음을 보게 되더라도 놀랄 게 없다. 자본주의가 어떤 궁극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면 결국 그건 보편적 혁명이 아니라 보편적 타락일 것이다.......

 

대중적 에너지를 집중할 구체적 기구 또는 기구들이 없는 선진자본주의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설 한 가지는, 새로운 시민적 자유가 장기적인 급진적 또는 혁명적 사회운동 발전에 반드시 기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미국식 상품 물신주의가 전 세계에서 거둔 승리는, 삶의 본능의 좌절을 유발하는 동시에 이를 헤픈 씀씀이를 통해 승화시킴으로써 대중적 저항의 본능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띤다. 오늘날 대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소비주의다......

 

왜냐하면 그람시는 자본주의 아래서 시민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종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는, 전면적 공세 ('기동전')를 통해 국가를 장악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곧 문화적/경제적/정치적/윤리적 차원에서 섬세하고 유연한 투쟁을 벌이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그람시가 참호 속 전투에 비유한 이른 바 '진지전' 상태에서, 좌파는 끊임없는 전투성보다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지도력'을 제시하게 된다. 끈기있고 부지런하게 통일적인 정치운동을 건설하는 걸 통해서,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분야와 이해관계들을 하나로 뭉친 헤게모니 블록을 형성함으로써, 혁명적 운동은 새로운 질서 l'ordine nuovo를 만드는 데 충분한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사회주의 개념 그 자체가 이제 자유 곧 세계 내 인간 및 인간 아닌 존재의 정신적/감각적/성적/사회적 실현과 공존하게 된다.....자유로운 의식과 경험의 새로운 방식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 직면한 도전은...낡은 맑스주의의 패러다임을 새로운 총체성의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총체성은 여성주의, 생태학을 비롯한 많은 해방 기획들을 일체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