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랑 회사 옆 천변에서 달리기를 하였다.
매주 수요일 마다 10km를 달리는 모임인데, 운동 효과가 생각보다 좋은 듯하여 꾸준히 뛰고 있다.
겨울이라 바람이 숭숭 통하는 쿨론/쿨맥스 재질을 버리고,
파워스트레치 재질의 트레이닝 복을 입고 뛰는데 옛 생각이 났다.
지금이야 온갖 옷감이 참 좋게도 나오고 있다지만,
우리 예전의 겨울은 오로지 투박한 내복 하나로 버텨야 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내복이 바로 소위 “빨간 내복”이라 불렸던 겨울 내의다.
기억하기론 아크릴 100% 정도 였는데......
(보온메리가 나온 것은 한참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이놈이 파워스트레치 재질과 유사했기에.
쭈그려 앉으면 무릎부분이 툭 불거져 형상 기억을 못하던 이놈은
보풀이 일기 전에 닳기부터 하던 것이어서
엉덩이나 무릎 부분을 한 번 쯤 기워주어야 했다.
덧헝겊도 역시 내복 쪼가리이긴 마찬 가지 였는데,
엄마의 빨간내복이기 일쑤였다.
또박 또박 바늘땀이 겨울 밤을 수 놓는다는 것은
엄마의 노동, 그 고생스러움에 대한 헌사가 될 순 없었을지니.
빨래줄에 무겁게 널려서는 고드름을 만들고,
한 이틀을 지낸 후에도 겨울 빨래는 잘 마르지도 않아,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아랫목에 뻐덩뻐덩한 내복을 두곤 했었다.
인터넷에 행여 '빨간내복' 사진 한 쪼가리 있나 뒤지다 그만 두었다.
우린 너무 빨리 주변의 사물을 잊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빨간내복’의 통칭과 달리 머수마들이 입었던 내복의 색깔은 쥐색의 내복이었는데,
빨간내복과 같은 회사에서 만든 것이리라. “흑진주 내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시골장터에서도 잘 보이진 않지만. 당시에 흑진주 내복은 값을 좀 쳐주는 축에 속했다.
몇몇 친구들은 초등학교 3학년까진 적어도 빨간 내복을 입었고,
학교에서 용의검사가 있던 날 정도라야 쥐색 내복을 입기도 했었다.
내복을 담았던 종이곽 역시 지금은 고향집 장롱 속에서
나의 초등학교 시절 개근상/통지표 등이 담겨 고스란히 예전을 기억케 한다.
오래 담근 더덕주가 그러하드끼, 손때가 묻은 찻잔이 또한 비슷하드끼,
역시나 오래된 것들은 오래된 곽 안에 담겨야 제맛일지니.
그 따스함이란......알맹이 없는 빈 곽으로도 오랜동안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올 겨울엔 시간 나면 시골 장터로 '흑진주'내복의 온기를 찾아 사냥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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