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그 때 그 집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03. 10. 19. 02:10

 

여의도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이제 분당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의사당 근처는 정겨운 곳이다. 바쁘지 않은 때가 없었듯이, 시절에 맞추어 윤중로의 벚꽃을 즐기진 못하였지만, 국토개발 연구원 (SBS 건물인 태영 빌딩과 사학 연금회관), 대림 엔지니어링에서 보냈던 시간은 청춘의 한 시절이라 이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어제는 거진 8년만에 예전의 직장 동료를 만나 소회를 나누었다. 총각시절부터 즐겨 다녔던 '그 때 그 집'에서의 모임은 우리들을 예전의 그 시간으로 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달라 졌다면야 한나라 당 당사가 옮겨가고, 새천년 민주당 당사도 없어지고, 새로이 민주 노동당의 당사가 들어선, 삼겹살집 삼원정은 옛 이름 그대로였다. 해도, 내부의 치장이나 주인 아줌마는 바뀌어 있었다. 하기야 소주병도 바뀌었고, 불판도 예전의 그 불판이 아닌 다음에야 무엇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었겠지만, 그 자리에 앉은 우리 모두는 예전의 그 모습에 비교적 가차이 다가가 있었다. 아니 그리 느꼈다.

 

옛적엔 그집에서 항상 우리가 첫 손님이었는데 (사실이지 5 10분부터 삼겹살집에 앉아 소주를 마시던 거리들은 우리 뿐이었다). 그럴 즈음이면 늦은 낮잠을 즐기다 주섬주섬 일어난 아줌마들을 채근하여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씩을 걸치곤 했다.

 

이야기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 함께 일했던 이들에 대한 호구조사로부터, 지금은 시집가 남의 아낙이 되었을 처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잔소리 심했던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다들 무엇하느라 이리 늦게 다시 만났는지. 너무 오랫만에 보면 할 이야기도 없다는 말은 실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그집'에서의 모임은 청춘의 때로 시간을 돌려놓았다. 판에 쌓이는 소줏병 만큼.

 

'그때그집'이라는 상호는 수덕사 앞에서 보았더랬는데, 그 깔끔한 산채정식의 맛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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