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보리밭, 관악산 자락의 한 뼘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03. 5. 18. 07:51

보리밭, 관악산 자락의 한 뼘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 난 산길에

누군가 보리를 심어 두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함으로만

한 생을 사셨던 분들이기에

저 자투리 한 뼘의 땅을

그냥 두지는 못하나 봅니다.

 

청보리가 어느새 희끗해진 것은

싹이 자라나서이기 보다는

아카시아 꽃잎이 진 탓입니다.

 

딸아이는 그것이 보리꽃인 줄로만 알아

저 또한 설명보다는

물끄러미 그 보리꽃을 쳐다 봅니다.

 

절로 떨어져서도

또 다른 생명의 꽃이 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이제 그 아카시아가 지고, 봄이 가고

밤꽃 내음이 밀려드는

초여름의 보리누름으로 달려갑니다.

 

멀리 남해 바다에서는 이맘 때 쯤이면

물오른 볼락이 펄펄 하겠지요.

 

저도 보리밭에서

바다를 봅니다.

가벼이 부는 바람에도

물결이 일어

 

흐르듯 멈추는 듯

세월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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