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철길 옆 이발소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0. 5. 4. 09:32

철길 옆 이발소

 

 

빨강 뼁끼로 이발이라고 씌여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숭미숭한 사분내미에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반창고 붙여진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찬 바람은 여전하였다

미금이 떨어지는 낡은 수건 몇 장은 뻐덩뻐덩 굳어진 채로 말라가고

구공탄 난로에는 면돗물이 끓고 있었다

널빈지 하나 깔고 키를 맞추어 겨우 앉은 이발소 의자

바리깡이 지나간 자리에는 하얀 서캐가 떨어졌다

왕년에 복서가 아닌 청년이 있었던가

이쁜이 빨간 사분으로 머리를 감겨주는 째보 아저씨의 우악살진 손가락이

목덜미를 스칠 때면 나는 찬 바람보다 더한 서늘함에 소름이 돋고

데운물 덜 섞인 물조리의 물이 차라리 나았다

북으로 뚫린 미닫이 문을 덜컹이며 탄약을 실은 화차가 지나가면

이발소 양철지붕을 버티는 가운데 기둥이 조금씩 기울었다

가죽 벨트에 스윽스윽 문질러 날을 세웠던 면도칼로

푸르스럼한 살키가 보이도록 면도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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