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대접
참으로 귀한 음식이었던 그것이
이제는 흔하디 흔한 음식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새록새록 추억 속으로 떠난다.
입학식이 있던 날의 외식이거나 졸업식날의 점심이거나 하던 짜장면과 함께
가락 국수 한 대접에 대한 추억 속으로.
무시무시한 파출소와 무기고 철조망을 뒤로하고
철길 옆에 경화반점이 있었다.
반점이라는 게 여관의 뜻도 함께 하나, 그 집이 여인숙도 같이 하였던가는 기억에 없다.
다만, 옆집에 여인숙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던, 반점이라니, 이 얼마나 사치스런 집이름인가?
뗏놈이라고 불렸던 그집 주방장은
(사실은 화교가 아니라는 소문이 많았다)
우동 하나는 기가 차게 말았는데
속풀이 술국으로 아버님이 자주 드셨다.
하여, 양푼 주전자를 들고 철길을 걸어 술국 심부름을 자주 하였다.
그 뜨거운 국물을 "시원하다"고 하셨던 그런 어법을
내몸으로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하튼, 아주 드물게 짜장면을 먹을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손이 왔을 때였는데,
손님치레가 익숙치 않은 집안이라
짜장면이 호사였던 셈이었다.
단무지의 노란색에서 묻어나는 때깔은
일본 고모의 서양식 치마의 빛깔 같은 것이었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짜장면의 색은
짜장의 카라멜 색이 아닌 노란색이다.
무에 곱게 물든 식용색소 황색 4호인가 무언가 하는.
하기야 대젓가락조차도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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