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1973년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0. 5. 11. 12:23

1973년

 

 

끝도 없이 오르고 싶은 전봇대에 저녁 까마귀 높이 따라 오르고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는 으레 수염 난 포수가 핏기 묻은 참새를 팔았다. 한 차례 퉁퉁 기적 소리 울려 기억의 흔적 쓸어내며 기차가 지나가버리면, 팽나무 그늘이 넓은 공장의 공터에 찬 바람 하고만 놀 수 있었다. 오후의 햇빛 아래 배고픔은 부서져 나간 붉은 벽돌담으로 낡아있었고, 코쟁이 미군들이 주는 소빵을 닮은 기와지붕 국민학교 운동장엔 아이들이 종일토록 밀가루에 취해 떠날 줄을 몰랐다. 마을 초입의 늙은 은행이 베어져 그늘 아래 장기 두던 할배들도 사라지고 새마을 노래가 우리들의 진따기 고함을 대신하였다. 이미 「오징어 달가지」 놀이에서 잡아 놓지 않은 무엇이든 가서 빼앗아 와야 한다는 걸 배웠고, 등을 태우는 오후의 땅따먹기에 세상의 땅덩이가 우리 마당에서부터 어디론가 점점 커다랗게 모여간다는 걸 느꼈다. 그해 겨울엔 유난히 초상이 많아 목청 걸걸한 거렁뱅이들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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