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흑백다방을 추억하며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0. 5. 9. 23:53

흑백다방을 추억하며

 

 

이레저레 진해를 거쳐가신 분들에게 흑백다방에 대한 한 자락의 얘깃거리 쯤은 있을 터.

 

다방에 대해서 말하자면, 군사도시의 한 전형으로 진해라는 곳은 참으로 다방이 많았던 곳이었지만, 조금 서늘한 느낌의 다방 하나가 있었으니, '흑백'이 아마도 그에 해당될 만한 곳이었다. 서늘하다고 표현한 것은, 당시의 다방 이름이, 해양극장 아랫길로 있었던가 하는, '청자다방'이니 하며 담배갑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흑백'은 유독 이질적인 느낌의 이름과 다방의 간판에서 보이는 간결함 때문이었으리라.

 


사실이지 신병 훈련소가 있던 경화동 6정문 앞의 '산호다방'인가 하는 곳이 좀더 따스하게 느껴진 이유는 한 친구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는 엉뚱한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마담 아줌마의 늘어진 한복에 쓸리는 바닥의 먼지가 오후의 햇살에 맞추어 사락사락 보풀 일었다 가라앉곤 하던 봉창같은 창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흑백'의 1985년 즈음은 신군부로 일컬어지던 암울한 시절과 그런 시절과 관계없이 항상 세일러 복의 수병들을 볼 수 있었던 당시 진해의 군사문화와는 조금 이질적인 지점에 자리한 까닭인데. 그것은 공간적으로도 그랬다. 일본풍의 목조건물과 길을 이웃하는 러시아식 양식의 건물들 속에 '흑백'이란 조금 어울리지 않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던 탓이기도 하였다. 

 

'흑백'에 내걸린 그림 아래에서 나는 먹물티를 내며 대학시절 고향에서의 방학을 보내곤 하였는데, 되짚어 돌아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던 짓이기도 하였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곧잘 선을 보던 장소로 기억되던 그 곳에서 시절의 룸펜이라도 된 듯이 한켠을 터억하니 차지하고 있었으니.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사람이래서만이 아닐터인데,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 가는 연어떼이거나, 처음같은 그 곳, 마음을 잊지 못하리. 하얀 고무신을 곧잘 신었던 철학과 동료와 보릿대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던 스무 여남살의 청춘이 함께 문화불모지를 한탄하며 온갖 시름을 삭이던 그 곳, 흑백. 시장 골목 '신생튀김집'으로 기억되는 곳에서 튀김가락국수 한 사발씩을 소주 안주로 넘기곤, 곧잘 흑백에서 '전형'과 '디테일'에 대한 이야기로 끝없던 대화를 하곤 하던 그 곳, 흑백.

 

하마면 그 곳, 흑백에 들러 지쳤던 심신의 단추를 끌러 내리고, 조용 조용한 음악과 함께 다향을 즐길 날 있을런지. 찻잔 속에 잠겼던 그림들과 물감냄새 살짝 묻어나는 오래된 벽그림, 붓질이 서툴렀던 내 고교시절의 미술반 생활도 되살아 날런지.


 이러저러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오늘 저녁은 흑백에서 듣던 봉선화 한 소절이 더욱 그립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내 모양이 처량하다-'아직도 진해 도서관의 앞에는 유신탑이 남아있는지. 철거되지 않은 전국 유일의 유신탑은 흩어져간 무언가를 기억케하며 아직도 도서관 정원에 서 있는지.....

 

그 유신탑을 마주하는 자리에 대각선으로 있었던 '흑백'.

 

 

 

이름처럼 명징했던, 흑백의 젊은 날이 젖은 화선지의 붓길처럼 퍼진다.

가녘에는 물러지기 마련이다. 이 즈음에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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