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20년의 위기, EH 카아, 김태현 편역 (2) - 법에 대한 존경은 그 법을 변경하는 정치적 장치가 법적으로 인정될 때만이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9. 12. 2. 17:20

20년의 위기, EH 카아, 김태현 편역, 녹문당


제4부 법과 변경


10. 법의 기초

10.1 국제법의 본질


모든 원시사회의 법이 그렇듯이, 국제법은 관습과 입법이라는 법의 양대 근원 중 전자만 인정할 뿐이다...

이처럼 직접 입법이 국제법에는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일부 국제법 학자들은

국가 자체가 국제법의 입법 기관이고

국가간에는 존재하는 많은 다자간 협약이 곧 "입법적 조약"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8쪽)


정치철학의 근본 문제는 왜 사람들이 스스로 피치자가 되는가이다. ...

유클리드 기하학의 명제가 유클리드 자신에 의해 증명되지 않은 것처럼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법 자체에서 찾을 수는 없다.

법이란 이 문제는 충분히 해결되었다는 전제 위에 진행되는 것이다. (209쪽)


법학의 영영에서 이상주의자들은 대개 "자연법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다.

법의 권위를 자연법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실주의 법학자들은 "실증주의자"로 불린다. 법으 권위를 국가의 의지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은 법을 윤리의 문제로 인식하는가 아니면 권력의 문제로 인식하는가의 차이이다. (210쪽)


10.2 자연법 이론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자연법은 다시 종교와는 별도의 윤리기준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17~18세기에는 자연법이 이성과 동일시되었다. "법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한 인간의 이성"이라고 몽테스키외는 말했다. (211쪽)

...19세기말에 이르러 "내용이 변하는 자연법"이란 새로운 개념이 등장...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는 "정당한 법"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감이다. ...

이제 법의 구속력은 모종의 영속적인 윤리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특정시점에 존재하는 사회의 윤리적 원칙에 따른 것이 되었다. (212쪽)


10.3 현실주의 법이론


실증주의 혹은 현실주의 법이론을 최초로 전개한 사람은 법을 명령이라고 정의한 홉스이다. 여기서 법은 윤리와 결별한다. ...

맑스에 따르면 모든 법은 "불평등의 법"이다. ...특정 시점과 특정한 장소에 존재하는 지배적인 집단의 이익과 정채을 반영할 뿐이다.

레닌이 말해듯이 법이란 "권력관계를 구체화하여 등록하는 것이며"..."지배계급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213쪽)


결국 법이란 사회의 정의를 반영하기 때문에 구속력이 있고 따라서 이는 공공의 선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동시에 법의 구속력은 권위체가 가진 힘 때문이기도 하여,

때로 억압적일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214쪽)


10.4 정치사회의 기능으로서의 법


요컨대 법이 구속력을 갖는 이유는 법이 없다면 정치사회는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법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14쪽)...

법이 없으면 정치사회도 없고 정치사회가 없으면 법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215쪽)


이처럼 법이 그 구속력을 주어진 정치적 질서에서 얻고, 동시에 그를 위해 기능하는 것이라면

"법의 지배"나 "인간이 아닌 법에 의한 통치"라는 문구에 함축되어 있는 법의 의인화는 오류임을 알수 있다.

...법은 그 구속력을 스스로가 아닌 외부의 존재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

또 스스로를 생산할 수도 스스로 적용될 수도 없다. (216쪽)


모든 정치사회에서 법이 필요한, 법만이 가진 이유는

그 내용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안정성 때문이다.

법은 사회에 고정성, 규칙성, 지속성을 부여하여 사회 속의 삶을 안정시킨다. (217쪽)


11. 조약의 신성함

11.1 조약의 법적, 도덕적 유효성


국제법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국제법 학자들은 소위 '사정불변조항 Clausula rebus sic stantibus'이

모든 조약에 묵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을 개발했다.

즉, 조약상의 의무는 체결당시의 사정이 지속되는 한 유효하며,

사정이 변하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220쪽)


국제의무의 불이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종 이용되는 또 다른 명분은

소위 '필요' 혹은 '사활적 이익'이라는 원칙이다.

누구도 불가느으한 일을 수행하도록 강요받을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법원칙의 하나이다. (222쪽)


전체적으로 따져 전간기에 조약의 위반은 법적 근거가 아닌 윤리적 근거에서 정당화되는 추세가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약을 위반하는 것이 기술적 의미에서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조약자체가 국제도덕의 위반이라는 근거에서 조약의 위반이 용인된 것이다.


국제조약의 도덕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주장은...


11.2 강박에 의해 조인된 조약

11.3 불평등 조약


베흐사이어 조약의 군축 조항이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의 하나는

강대국에 영구히 열등한 지위를 강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곧 베흐사이어 조약에 대한 비난의 핵심이

그것이 패전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약화된 독일의 지위를 영속화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227쪽)


11.4 권력도구로서의 조약


한 맑스주의 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약의 이행을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용하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마찬가지로 국제조약의 법적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배민족이 약소민족에 대한 그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무기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주장은 법이란 윤리와 무관한 권력의 억압수단이라는 현실주의 법이론에 내포되어 있다. (228쪽)


법과 조약에 대한 존경은 법이 그 법을 변경하고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치적 장치가 법적으로 인정될 때에만 유지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법에 앞서서 정치적 힘의 작동을 인정함에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