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1) - 모든 통치집단은 피지배자의 망각을 요구한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9. 11. 25. 01:05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서적


마지막 페이지 - 연대기적 순서를 뒤엎는 [독서의 역사]


Migel de Unamuno는 어느 소네트에서 시간에 대해 "그대의 근원은 미래에 있노라"라고 노래했다.

...그처럼 나의 독서생활 역시 내가 앞서 읽었던 것들을 뛰어넘으면서 조류를 거스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18쪽)


버지니아 울프도 "해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새로 일고 그때마다 감동을 글로 남기면

그것은 사실상 우리 자신들의 자서전을 기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인생 경험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인생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해석도

그만큼 더 절실하게 와닿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1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책들이 특정 독자들에게 어떤 특별한 인상을 안겨주는 것은 사실이다.

책 한 권을 소유하는 행위에 잠재적으로 담겨있는 곳은

앞서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독서의 역사이다. (30쪽)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고 있다."고 아르헨티나의 작가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는 촌평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37쪽)


삶과 독서 사이의 인위적인 이분법은 권력을 쥔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조장된다.

인민의 통치집단도 피지배자의 망각을 요구하기 때문에 책을 쓰잘데 없는 사치라 낙인 찍는다.

반면 전체주의 통치 집단은 국민들에게 사고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책을 금지시키고, 위협하고, 검열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자신들의 퇴행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알맹이와 가치가 없는 것들을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그런 상황에서 독서가들은 오로지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40쪽)


독서 행위 그 자체처럼, 독서의 역사는 우리 당대로 - 나를 향해서, 그리고 독서가로서의 내 경험을 향해서 - 돌진해 왔다가

아득히 먼 세기의 첫 페이지로 되돌아간다.......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하얀 성]에서..."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다면...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은 뒤에 언제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음으로써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인생을 이해한게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