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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리야드Riyadh의 휴일-사우디 국립 박물관

정면 사진은 없네요..... 박물관 뒤편의 정원입니다. 물을 흘려두는 곳이라 천국인 셈인지..... 유물관은 좀 썰렁합니다. 역사를 증명키 위한 돌덩이와 고대 인류의 그림과 낙서, 그리고 오랜 문자 형상들을 전시해두었습니다. 이게 아마도 생활 용구의 종합판일 겁니다. 찻주전자와 향을 태우는 향로 등이 보입니다.

사우디 리야드Riyadh의 휴일 - Al-Turaif

비님이 오십니다. 중동 사우디 리야드에 비님이 오시는 날, 설날을 잡아 리야드 북쪽의 Diriya 역사지구로 갑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Al-Turaif 입니다. (인터넷 사전예약이 필요합니다. Al-Turaif만 본다면 무료입니다. 아마도 인원수 조정이나 식당연계권의 판매 때문일 겁니다.) 근처의 카페촌은 요즘말로 핫플레이스 같은 느낌입니다만 저의 관심은 아닌지라.... 이 건물이 아마도 Salwa Palace일 겁니다. Saud 왕조의 랜드마크일 겁니다. 건축박물관에는 외벽의 배기 목적 삼각창을 모사한 모형이 있습니다. 길 바닥이 젖었다며 통로를 열어주지 않아 바깥 풍광을 먼저 담습니다. 간헐천이라는 Wadi 건너편에서 바라본 Al-Turaif 사우드 왕조터입니다. 날씨가 좋았다면 색감이 ..

사우디 리야드Riyadh의 휴일-Al-Masmak 요새

난전 Souq Al-Zal을 찾아나선 길입니다. 난전은 야시장이라야 제 맛일 겁니다만. 훤한 대낮에 찾아갑니다. Al-Masmak 요새입니다. 저는 늘 문짝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짝의 구조적 형식이며, 문양이며, 그리고 문지방과 인방틀 등등. 너무 이른 시각의 방문이라 대부분의 야시장 Souq의 문은 닫혀있습니다. 향나무를 태우는 향로도 있고, 아라비아 찻주전자도 보입니다. 원래는 낙타 가죽 제품이 유명한 모양인데..... 한 토산품점의 낙타입니다. 중국산이 태반입니다. ....

소리의 얼굴

빛의 바깥은 먹먹하다. 소리의 경계도 그럴 것이다. 늘 소리 안에서만 소리를 듣는 우리는. 소리 바깥 저 멀리 소리라 이름부를 수 없는 그 자리가 궁금하다. 소리가 지나간 곳 소리의 뒤통수가 아니라 소리가 다가오는 소리의 얼굴을 듣고 싶다. 여름날 소낙비가 내게로 달려오듯 땀방울 방울지며 다가올 소리의 얼굴을 읽고 싶다. 소리인들 자신의 앞에 놓인 무언가를 알고 싶어할 터인데. 우리는 모두 서로의 얼굴인 다음에야.

조선왕조실록에서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조정 대신이라는 양반들이 조정에서 했다는 백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화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네들이 백성을 걱정했을리도 없거니와 그런 우아하고 민주적인 대화를 했을리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들의 걱정은 오로지 자기네의 부의 축적과 상속 그리고 세금의 수탈을 통한 순환적 축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즈음의 국회도 동일하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이 불편하다면) 아마도 동일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성군이라고 알려진) 정조편을 들춰보자면, "춥고 배고파 신음하면서 떠돌아 흩어진 사람이 태반인데, 땅이 있는 백성들은 먹을 곡식이 없고 땅이 없는 백성은 살 곳을 잃어 의지한 데가 없다. 그런데다가 세금 재촉에 못 이겨 세금을 내고 나면 실가(室家)가 텅 비게 되니"로 번역된 문장을 ..

가난이 유일한 저항이었던 시절에서 단산(斷産)만이 저항으로 남은 시절에.

우리가 전조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전조의 짙은 그림자로부터 초래된, 그 전조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즉, 개개의 (원인이라고 믿어지는) 현상이 망조의 전조가 아니라, 그 자체가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追仰 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망조의 전조가 이미 발현된 상태로서  희망을 상실한다. 간디의 표현으로부터 빌어오자면, 노동없는 부가 욕망받고, 지식과 과학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지는 오래되었다. 믿음 역시 자본의 한 축으로 흘러 희생을 기대하는 이는 없다. 일본을 닮아 가는, 혹은 닮아 있는 한국의 정치는 원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도 민망할 따름이다. 노회( 老獪)하다는 표현이 달리 나왔겠는가? 그래도 망하지 않는다고? 그럴 것이다. 조선이란 나라가 외세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속되었을 것이란 데에는 나는 ..

일본의 역사, 씨성제 氏姓制 - 근거지나 종사하는 일의 명칭을 따라서

일본의 역사, 연민수 편저, 보고사 중국에서는 280년 위 魏에 대신하여 진 晉 西晉이 전국토를 통일...이윽고 북방민족의 침입에 의해 남으로 쫓겨나 이후 중국의 왕조는 남북으로 나뉘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이를 기회로 동아시아 제민족은 점차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국가 형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31쪽) 5세기말에서 6세기에 걸쳐서 기나이(畿內)를 근거지로 하는 야마토(大和) 정권은... 6세기에 들어서면 신라의 대두가 현저하게 되고 역으로 백제는 수세에 몰리게 돼... 백제는 중국의 남조에 적극적으로 외교활동을 펴는 한편 야마토 정권과도 친교를 맺어 신라의 공세를 견제... 이러한 동아시아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 야마토 정권의 대백제 관계는 깊어지고 백제 문화가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야..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3) -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무지증무득 無智證無得

반야심경의 많은 축약이 경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이란 구절 역시 그러하다. 단순하게 새기자면, 앎 혹은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정도이다. (중국식 한자는 知와 智 의 구분이 명확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고 갑골문엔 知보다 智가 먼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智 는 사냥 혹은 전쟁의 기술 쯤에 해당하는 앎이나 지혜이다.) 좀 더 친절하자면, 앎 혹은 지혜가 없으니 얻을 것도 없다로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앎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한 앎이고,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가? (질문을 좀더 해 보자면,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알게되고,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얻게되는가, 이다.) 이 문구의 처음을 따라가 주어를 찾아보면, 是故空中, 즉, 공..

반야바라밀다심경 - 唐 지혜륜 智慧輪 스님 본

*반야심경에는 廣本(大本)과 略本(小本)이 있어 흔히 암송하는 반야심경은 원숭이 오공(悟空:悟字배의 스님이라는 설이 있다. 그보다는 공을 깨쳤다는 게...)을 데리고 오천축국을 다녀온 삼장법사 현장 스님의 약본이다. 결론적으로 인연과 서사敍事가 빠져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지혜륜 智慧輪 스님(이 분도 삼장이시다)이 번역한 광본의 반야심경을 옮겨둔다. *불경은 듣기(聞)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쁨으로 연습(學)하고 실천(行)하는 데 의미가 있다. 광본의 처음과 끝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약본의 정종분(正宗分)은 그것을 잘라버린 것으로 불교를 개인적이고 폐쇄적이며 수동적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 般若波羅蜜多心經 唐上都大興善寺三藏沙門智慧輪奉 詔譯 如是我聞。一時薄誐梵。住王舍城鷲峯山中。與大苾蒭眾。..

내 고향 진해(鎭海)

정치인들의 놀음에 지금은 창원(昌原)에 묶여 버렸지만, 진해는 진해이다. 1786년 일본의 지도에서 진해와 진해만의 위치는 오늘날과는 차이를 보인다. (정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진해의 위치가 어디인가 아니고 이 시기에 일본이 이 정도의 지도를 출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국이 빨랐다고 한다손 치더라도, 실질적으로 국제적인 -혹은 엄밀히는 제국주의적인-시각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즉 창원부를 지나 서쪽으로 함안과 고성의 사이, 진해만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의 진동, 진북, 진전면을 "진해군"으로 표현하고 있다. 몇 년 뒤인 조선의 1861년 대동여지도의 진해군 역시 그러하다. 정작 지금의 진해는 웅천의 위치이다. 어느 바다인들 통하지 않으련만, 일본군항으로서의 진해만은 역시 진해의 이동과 더불어 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