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생활한 적은 없지만, 싱가폴의 문례(文禮)동 생활은 꽤차 한 지라,
저 장면은 익숙하다. 런닝만 입은 노점장터에서 국수를 팔고있는.
사실 국수이기 보다는 그 다음 장면에서 양조위가 먹고 있는 완탕수프일 가능성이 높다.
여튼 스탠리 빛깔의 햄머톤이 낡을수록 아름다운 저 국수통 때문은 아니겠지만
스탠리의 죽통, 써모스의 죽통, 에스비의 죽통 그리고 또 몇 가지의 죽통을 가지고 있다.
(손잡이가 없다는 게 흠이다.)
한 번도 요즘말로 테이크 아웃을 한 적은 없다지만.
저 처연함이 묻어나는 장면, 슬프다 못해 아름다운 장만옥의 뒤태가 가슴아픈 계단 장면,
흔들리는 보온 국수통은 늘상 우리 삶의 모든 때와 곳의 자락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아버지 술국 심부름으로 양은 주전자에 우동국물을 받아오던 기억이 묻어난다.
가난했던 그 시절, 집안에 보온통이라고는 없던 날들.
식어버린 국물로 해장하시던 난닝구 차림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버랩된다.
왕가위 감독의 영상은 예술이다.
내가 화양연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무언가 일이 생기기 딱 좋은.
그러나 빨간색 전단지의 약 광고(哮喘)가 보여주듯 천식만큼이나 답답하고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 예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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