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조정 대신이라는 양반들이 조정에서 했다는 백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화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네들이 백성을 걱정했을리도 없거니와 그런 우아하고 민주적인 대화를 했을리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들의 걱정은 오로지 자기네의 부의 축적과 상속 그리고 세금의 수탈을 통한 순환적 축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즈음의 국회도 동일하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이 불편하다면) 아마도 동일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성군이라고 알려진) 정조편을 들춰보자면,
"춥고 배고파 신음하면서 떠돌아 흩어진 사람이 태반인데, 땅이 있는 백성들은 먹을 곡식이 없고 땅이 없는 백성은 살 곳을 잃어 의지한 데가 없다. 그런데다가 세금 재촉에 못 이겨 세금을 내고 나면 실가(室家)가 텅 비게 되니"로
번역된 문장을 보면 무언가 국왕이 백성을 걱정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세히 보자면) 세금의 문제를 거론한다. 곧, 세금이 걷히지 않을 상황을 걱정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나에게는. 한국어는 '그런데다가' 등을 삽입하여 왕의 백성걱정을 순수하게 다루고 있다. 결단코 지배계급이 그럴리가 없다. (위의 단정적 표현이 또 불편하다면) 없을 것이다.
원문을 보자.
旱澇風雹, 收穫無幾, 凍餒殿屎, 流散居多, 有土之民, 無穀可食, 無土之民, 失所靡依。 催稅納租, 室家如罄, 扶老携幼, 道路行丐。
가뭄과 홍수, 바람과 우박으로 인해 수확이 적고, 궁궐이 얼고 물이 마르고, 많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흙이 있는 사람은 먹을 곡식이 없고, 흙이 없는 사람은 집을 잃었습니다. 세금과 집세를 내면 가족은 지치고, 노인과 젊은이를 부양하고, 걸인들이 길을 걷게 됩니다.
이같은 상황 묘사에서 정작으로 걱정은 '다음에는 세금을 걷지 못할 수 있다'가 아닐까가 나의 질문아닌 질문이다.
" 풍년과 흉년이 하늘에 달려 있다고 말하지 말라. 이 또한 사람이 부지런히 하거나 게을리 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정조조에 있는 대목이다. 백성의 게으름을 질책하고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의 게으름에 탓을 돌린다.
" 역사를 일으켜서 백성들이 농사의 때를 놓치지 말게 하며 이서(吏胥)를 풀어서 백성들을 동요하지 말게 하며, 과조(科條)에 따라 세금을 거두어들여 민력을 고갈시키지 말게 하며, 방치해 두어 민심을 게으르게 하지 않는 것은 수령의 직책이다. "
수령의 직책이 무엇인지 여실하지 않은가? "게으른" 백성을 게으르지 않도록 다그치고 세금을 걷을 수 있게 만들라는 얘기 아닌가? 조선, 그 아름다운 나라의 모습이다. 활자의 나라이라거나 기록의 나라이라거나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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