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조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전조의 짙은 그림자로부터 초래된, 그 전조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즉, 개개의 (원인이라고 믿어지는) 현상이 망조의 전조가 아니라, 그 자체가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追仰 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망조의 전조가 이미 발현된 상태로서 희망을 상실한다.
간디의 표현으로부터 빌어오자면, 노동없는 부가 욕망받고, 지식과 과학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지는 오래되었다. 믿음 역시 자본의 한 축으로 흘러 희생을 기대하는 이는 없다. 일본을 닮아 가는, 혹은 닮아 있는 한국의 정치는 원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도 민망할 따름이다. 노회( 老獪)하다는 표현이 달리 나왔겠는가?
그래도 망하지 않는다고? 그럴 것이다. 조선이란 나라가 외세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속되었을 것이란 데에는 나는 쉽게 동의한다. (소위 맹아론은 민중적 전망이 있었으려나와, 이러한 조선 정체성 이론이 식민사관이라면 어쩔 수 없겠다만. ) 양반의 악질적 착취와 착취에 기생하는 마름꾼들과 희망이란 단어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생활에 찌든 사람들과. 그냥 두었으면 자기의 관성 아닌 관성으로 그렇게 굴러갔을 나라.....그것이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에서도 계급적/관료적 (혹은 부동산 토지 가격의) 천이를 표면으로 삼아 여전히 유효한 표현이고 또 재현되고 있다면. 식민사관이라고? 그 시작이거나 현상을 보는 시점은 동일한 판단기준 위에 있다. 이제 무엇으로부터 달라지고 있고 또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가 질문이겠지만.
가난이 유일한 저항이었던 시절을 지나와서, 이제는 단산(斷産)만이 마지막 저항이 되고 있는 시대.
자본착취에 맞섰던 노동의 시절을 지나 여성의 몸 만이 유일한 저항으로 남는 이 시기에,
우리가 조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잣대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한다면. 아, 어쩌란 말인가? 이 처절한 시대와 천박한 속성은.
망조만 남았다기에는 우리의 삶은 참으로 끈끈해서 온 몸 그 하나로 버틴다.알든 모르든 모든 이론을 뒤로하고 느껴진대로 움직일 것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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