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김용호, 주막에서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4. 6. 14. 05:07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酒幕)  

   그
   수없이 많은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엔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오래된 시 한 편을 옮긴다.

마산 사람 김용호의 시편이다.

탁자옆에 놓인 소금독의 왕소금이나마 안주 삼아

잔술을 먹어본 이만이 알 수 있는 

허허로움이거나 혹은

또 다른 잔술에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야 하는 노곤함이  설비치는 글이다. 

저 한자 몇 마디 구절이 아니었다면

서정의 환기는 더욱 절절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저 한자를 그냥 뜻없는 문자로 읽으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저녁나절과 인생의 한 시절이 영상처럼 겹쳐진다.

 

오늘 저녁,

막걸리잔에 입술이 닿는,

나도 주막 같은 저녁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