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酒幕)
그
수없이 많은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엔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오래된 시 한 편을 옮긴다.
마산 사람 김용호의 시편이다.
탁자옆에 놓인 소금독의 왕소금이나마 안주 삼아
잔술을 먹어본 이만이 알 수 있는
허허로움이거나 혹은
또 다른 잔술에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야 하는 노곤함이 설비치는 글이다.
저 한자 몇 마디 구절이 아니었다면
서정의 환기는 더욱 절절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저 한자를 그냥 뜻없는 문자로 읽으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저녁나절과 인생의 한 시절이 영상처럼 겹쳐진다.
오늘 저녁,
막걸리잔에 입술이 닿는,
나도 주막 같은 저녁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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