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권위의 무게로도 새로운 의견이나 자유로운 검토를 막을 수는 없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2. 11. 21. 12:07

그토록 저명한 학자들이 채택하고 승인하는 의견이라면

옳다는 쪽으로 확률의 무게가 크게 기운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경제학 이외의) 다른 과학에서는

이러한 권위의 무게가

새로운 의견이나 이론에 대한 자유로운 검토를 막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권위가 틀린 쪽에 있었음이 마침내 밝혀지는 일도 종종 있다. (1판 서문에서)

 

물리과학 모두가 얼마간 명백히 역학의 일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듯이,

경제과학의 모든 부문에 어떤 일반 원리가 퍼져 있어야 한다.

그런 원리를 탐구하는 것, 이기(利己)와 효용의 역학(the mechanics of self-interest and utility)을 밝혀 내는 것,

바로 그것에 이 저작이 바쳐졌다.

그런 이론의 확립이야 말로 과학 전체의 상부구조를 결정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필요한 준비이다. (2판 서문에서)

 

제번스 [정치경제학이론] 서문;

 

 

경제학에서 문제의 앞뒤가 바뀌는 주제가 또 있다. 노동은 생산의 출발점이고, 노동자의 이해는 경제학의 주요 주제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얼마 가지 않아 갑자기 돌아서서 노동을 자본가들이 사들이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노동은 노동 생산물의 분배에 작용하는 법칙의 대상이기 보다 그 자체가 공급과 수요의 법칙의 대상이 된다.

.....경제학자들이 자본이 노동을 사 들이는 가격에 관한 매우 단순한 이론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문제의 핵심은 그 목적에 할당될 부분을 정하는 것이며, 그 부분이 유동자본의 전부일 필요가 없다. John Stuart Mill이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정치 경제학 원리]에서 분명히 말하였듯이, 자본이 산업의 한계를 정한다고 해서 산업이 항상 그 한계에 도달하리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제 내가 보탤 것은 몇 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경제학자들이 애호하는 여러 이론에 대해 과감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나로서는 이의보다도 동의가 훨씬 즐겁다.

그러나 진리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면, 틀렸다고 생각되는 이론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의견이 굳어져서 믿음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해로운 경향이다. ......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권위는 진실의 가장 큰 적이다.

전제적 평온은 항상 오류의 승리이다.

과학의 공화국에서 소란은 물론 혼란조차 장기적으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한다.

 

제번스 [정치경제학이론] 결론;

 

(문자그대로의 정치경제학을 기대했던가? 經世濟民,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을.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비슷한 구절을 나는 영국의 건설산업 연구정보 협회 (CIRIA)의 한 보고서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e report is

to guide practical engineers and designers

towards the construction of safe, economic and effective cofferdams for temporary works.

The report is

not intended in any way to restrict innovation and the development of new techniques.

The use of alternative methods of design and construction techniques,

provided they can be substantiated,

is not precluded by ommission from this document.

 

공학의 자세와 인문학의 자세가 어찌 다르다 할 것이며,

바탕의 생각이 어찌 같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