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기술적인 안전? 원전 방사능 오염수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3. 5. 25. 17:08

일본이 방류하고자 하는 원전 오염수는 '기술적'으로 안전하다. 이는 우리가 아는 지식의 범위 안에서-그리고 그 범위라는 한계 안에서- 그러하다.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위험하다고 알려진 물질의 소멸 혹은 분리, 중화가 아니라 단순히 희석시켰으므로. (희석이 현시점의 기술수준으로 '기술적'으로 안전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기술적'인 안전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안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기술적'인 안전이란 어쩔 수 없는 상태나 국면에서의 선택지이지 무제한적이고 절대적인 (기나긴 시간과정에서 또 인류진화의 과정에서의) 안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무너질 수 없다는 건물도 무너지고, 튼튼하게 지었다는 다리도 자빠지며, 인간의 모든 공학적 행위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지극히도 당연하지만- 남긴다. 내적으로는 재료의 부실함과 불균일성, 혹은 과정과 행위에 대한 관리의 부실함이 원인이겠지만, 외적으로 우리가 가정한 기술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무엇에 의해서 그러하다.

 

요컨대 그것은 사회경제적 범위 안에서의 '기술적'인 안전이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지구적 프레임이나 시간의 범주에서 그러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껏해야 대부분의 '기술적' 안전은 50년에서 100년의 사용기한을 전제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도 기껏해야 5000년 정도의 외적인 과정과 시간을 안전에서 가정할 뿐이다. (그것도 어떤 확률 이하로.)

 

방류 방사능수 역시 이러한 혐의-가 아니라 확증이겠지만-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제대로 관리된다면-전문가라는 사람들이 ALPS는 흔히 채택되는 방법이라- 안전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좀더 적확히는 현재의 기술수준과 '경제적' 고려를 감안할 때 채택되는 방법이며, 그 결과가 늘 최상의 안전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원전론자 역시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채택하는 방법이기에 일본의 태도에 무언가 '기술적'인 반대를 할 수 없을 것이고 보면, 전문가의 얘기가 기술적 범위와 경제적 한계 안에서의 한정적 선택일 뿐 필요충분한 해법은 아닐 것이다.

 

일본이 강행하고자하는 방향과 동일한 논리라면, ALPS로 처리된 방사능 오염수에 강물을 섞어 희석시켜 농업용수로 사용하길 권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 수량의 강물을 구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담수화 설비를 가동하여 바닷물에서 담수를 추출할 일이다. (물론 돈이 좀 들기에, 많이든다, 단순히는 해수의 100배 쯤 들것이다,  30년의 가동을 생각한다면 발전소를 한 둘 쯤 다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채택하지 않을 방법이란 것은 삼척동자면 모를까 주머니 돈을 용돈으로 받는 초등학생이라면 알 것이다.) 비싸게 담수로 희석시켰다면 이제 수돗물로까지 사용하길 권할 수 있다. 저들의 표현대로 '기술적'으로는 대단히 안전하기 때문이다. 

 

가장 싼 방법으로 바닷물로 희석시켜 숫자놀음으로 '기술적' 안전을 들먹이는 일본과 (조만간 나타난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국의 원전론자들에게 나는 담수 희석을 통한 일본 내의 재활용을 권고하고프다. '기술적'으로 분명히 안전하니까, 혹은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이 하는 얘기처럼  '기술적'으로 유의미한 방사능 노출이 없으니까.

(아, 물론 그보다는 아니겠지만 덜 위험하고 덜 험한 물질이 세상에는 많다. 그렇다고 모두 기술적 안전 범위 이내라고 허용되어도 좋다면 어찌되겠는가? 독극물이라고 할 지라도 물로 무작정 희석한다면 '기술적'으로는 대단히 안전하다. 당장은 죽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희석은 분리나 중화, 제거나 소멸이 아니다. 방사능에 대해서 부차적인 2차 독성을 유발할지는 현재의 기술수준과 시간과정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일본의 이런 작태를 허용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원전에서 동일한 미래를 현실로 맞닥뜨리는 비극을 곧 맞게 될 것이다. 원전론자들에 의해 -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고에 대해서- 같은 논리로서 사고의 결과를 무마하려 하려는.

 

그리고는 '기술적인' 안전을 '과학적' 안전과 혼용하면서 사태를 왜곡시킨다. 한정적 시간과 제한적 지적 범위내에서의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고려를 '지구적 시간 프레임에서 생명진화의 여러 관점에서 반복적이고 항시적으로 안전한, 또 검증된 '과학적인' 안전으로 슬그머니 넘어간다. )

 

일본이 한다면 바른 길이라고 믿고 있는 늙은이들-비단 나이만이 아니라-이 있다. 우리의 부분적 근대화의 외피가 일본의 약탈 과정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이고, 그러한 약탈에 기생하여 살아온-부와 지식과 명예를 거머쥐고- 이들의 양상이 있기에. 친일이란 게 별 게 아니다. 지금의 친미론자처럼. 젖어들어 속곳까지 젖어있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과거의 관성을 고집하며 자신의 이익을 영속시키려는 자들이다.  바뀌어진 시대에 눈감고 자신이 믿어온 '과거'와 그 과거의 한 축인 일본을 고집하는 누구라도.)

 

최근 국회질의에서 국회의원들이 소위 과학자와 전문가라고 알려진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 '당신이라면 마실 수 있는가?'는 틀린 질문이 된다. (그런 국회의원을 뽑은 우리들은 무엇인지? ) 개인의 견해와 판단이 '과학'을 대체하지도, 또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냉정히는 '앞바다 방류외의 다른 방법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등을 물어주어야 한다. 개인의 견해가 아닌 준비된 전문가의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답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