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잃어버린 것들이 비단 말 뿐이겠는가?
시대와 사물 역시 이러한 잃음 혹은 잃어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나의 경우에는 '천벌 天罰'도 그 하나로 꼽는다.
세상에 스스로 대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그나마 하늘의 힘-대신해줄 사람들의 힘-을 빌어 자신에게 씌워진 불평등을 걷어내고자 했던 아쉬움이
무당의 살풀이 같은 한스런 단어에 묻어 있다.
시대의 한계 속에 자발적 순응을 택했던 사람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때
그나마 믿을 만한 구석을 만들고자 했던 그 단어, 천벌,
우리는 그 단어를 잃었다.
애초에 천벌은 없다. 일찌기 김남주 시인이 서슬퍼런 시절에 말했다지 않던가.
정당화될 수 없는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처참히 쓰러지는 세상의 삶을 볼 적에.
'천벌 같은 건 없다. 이것이 세계의 참모습이다.'
이제는 누구도 천벌을 얘기하지 않는다.
(비록 '천벌'이 전근대적 세계관의 산물이라지만,
그 단어를 지금 우리가 비록 잃어버렸다 한들,
우리나 우리사회가 근대화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세계의 참모습을 깨달아서도, 세계를 올곧데 변혁시켜서도가 아닌,
세상의 무게에 스스로를 묻어버린 탓일 것이다.
멈출 줄 모르는 자본의 폭력 앞에 예전의 그이들처럼 자발적 순응을 스스로의 의지라 믿는 탓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급을 잃고 굴러가는 탓일 것이다.
김형수 선생님이 김남주 평전을 냈다고 한다. 무심했다. 책은 작년에 나왔다는데.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시와 생애에 대해 다시 묻고프다.
나는 또 어떤 날을 지켜 걸어가야 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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