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0 노동과 노동자 - 자유로운 활동에는 사례금이, 얽매인 활동에는 임금만이 지불되었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3. 6. 16. 16:54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0 노동과 노동자, 베르너 콘체 지음, 이진모 옮김, 푸른역사

 

화폐경제, 도시경제, 해양경제가 발달함에 따라...육체노동으로서의 노동(농사나 제조활동)은 완전 시민이 아니고 노예에 이르는 하층민에게 부과되었으며 (16쪽)...수공업적 노동이나 임금노동에 대한 저평가는 이미 오랜 예전부터 있는 일 (17쪽)

 

플라톤은...육체노동을 하는 자들의 생활방식은 시민적 덕목과 합치될 수 없다...(플라톤의 생각에 따르면) 덕을 가진 자만이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고전고대의 정치관에 따르면 시민사회는 폴리스에 적합한 덕목 위에 성립되는 것...노동이 아니라 적절한 활동이 시민의 특징이었다. 한편에 노동과 시민적 덕목이, 다른 한편에 노동과 교육이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여기에 세 번째 대립개념으로 불가피하게 여겨지는 활동의 목적이 목표에 해당하는 여기에 여가가 놓여 있었다. (17쪽)

 

아리스토텔레스는...인간의 행위를 세분화할 때...가장 상위의 개념은 행동하다 또는 만들어내다로 표현되는 행동 그 자체였다....인간활동은 외부의 물체를 대상으로 하며 그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작품을 결과물로 갖게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노동의 성격을 지니게 되거나 또는 인간세계, 폴리스 안에서 움직이면서 폴리스를 작품으로 보존하기 위해 항상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선한, 다시 말해 덕스럽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인간들이 통치하고 결정하는 행위에 속하는 모든 것, 계속되는 실제활동은 생산활동의 상위로 분류되었다. (18쪽)

 

노동과 실천의 차이는 훗날 '예술'과 '장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좁은 의미에서 예술과 장사를 노동과 구분하는 것도...즉, 노동은 육체적인 힘과 관련된 행위였다. 이러한 구분은 예술과 장사의 행위형태를 노동이 아니라 지식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상반된 것으로 구별하는 근대적 이해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예술과 장사는 노동, 육체적 봉사와 도움, "행위의 도구"를 전제로 하지만, 그 자체가 노동은 아니었다. (18쪽)

 

키케로는...근거로서...고전적 정치관을 제시했다. 자유교양학문은 자유인의 덕성, 라틴어 prudentia (분별심)에 기인하며, 그 목적이 지속적인 유익성 또는 명예이지, 단순한 필요성이나 부질없는 쾌락이 아니었다. ...자유예술이 자유인에게 걸맞은 예술이라고 보는 정치적인 범주나 육체와 정신의 상반성을 주장하는 철학적 범주가 이런 구분의 배경에 깔려있었다.

 

그러나 법률적인 범주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당시 자유로운 활동 operae liberales (판사나 의사)을 위해서는 "사례금honorarium"이 지급되지만, "얽매인 노동 operae illiberales"을 위해서는 "임금merces"만 지불될 수 있었다.

 

기원전 2세기까지 군대제도의 기초가 되었던 로마의 농업적 전통에 따라, 자유인의 경작은 일반적으로 무시당하던 노동에서 제외되었다. (19쪽)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와 같은 시문학 작품이...신화적 배경은 수고나 제작행위로써의 노동labor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황금시대'의 종식이었다. (20쪽)

 

라틴어 labor가 수고뿐 아니라 즐거운 일에도 해당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20쪽)는 사실을 통해...labor가 수고스럽고 목표달성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라는 의미를 얻었을 때 이 개념은 미덕virtus과 연결되어, 높은 가치를 지닌 근면industria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labor, 즉 활동을 통해 (특히 군사적인) 용감함을 검증함으로써 명예를 얻기 원했던 로마인들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비천한 노예노동 또는 수공업 노동이란 개념으로부터의 해방은 중세에도 이어졌으며, 기독교적 노동전통과 결합되었다. (21쪽)

 

초기 기독교적 노동개념이...신이 창조자로서 스스로 그의 노동을 수행(21쪽)했으며....노동하는 신이 인간에게...창조작업으르 계속하라고 내린 "명령"이었다. 그러니까 인간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노동이 주어졌으며...신의 말씀에 대한 거역에서 비롯된 죄 많은 인간의 행동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되고 땅이 신에게서 저주받자("땅은 너희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희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너희가 땅으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너의 식량을 얻을 것이다.") 땅에서의 노동은 '고생'이 되었다. ...그런데도, 또는 바로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생 때문에, 노동이 신에 대한 '예배(제사)'로서 행해진다면 그 노동으로 인해 신의 '축복'이 주어진다. (22쪽)...그런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처럼) 노동은 더 가치 있거나 덜 가치 있는 것으로, 또는 더 명예롭거나 덜 명예로운 것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신 앞에서 인간의 평등은 그들이 행하는 활동의 가치에 따라 구별되는 통상적인 사회의 신분질서보다 오히려 중요했다....따라서 노동은 그 가치면에서 신분이나 신분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23쪽) ...인간의 자신의 존재에 합당한 독특한 노동을 통해 신의 역사役事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24쪽)...이로 인해 노동에는 한계가 주어졌다. 노동은 독자적 가치를 지녀서는 안 된다. 노동의 날들은 노동 없는 신성한 휴일에 의해 중단될 때에만 그 의미를 지닌다. (25쪽)...봉사로서의 노동의 성격이 토대가 되어....ㅣ신분과 관련된 노동개념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 (26쪽)

 

기독교적 노동개념에서는 사회적 신분 상승이나 이동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사회변혁이나 사회전복 같은 과정도 도출될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평등에 의해서는 사회혁명적인 평준화가 전혀 초래되지 않았으며 서열화된 기존 질서가 논쟁의 여지없이 유지되었고 사실상 기독교적인 근거를 내세우는 군주국가를 통해 정당화되고 지속되었다. (35쪽)...기독교 (루터파) 노동개념에는 현세적 재산에 대한 만족감이 포함되었는데, 재산에 "마음Herz"이 집착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근대적 직업세계에서는 만족감이 원칙적으로 정체와 퇴보를 구분 짓기 때문에, 순수한 만족감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기독교적 노동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인도하는 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37쪽)

 

도덕 신학적인 규정의 토대가 약화될수록, 노동개념은 기독교 신앙 및 그에 따른 도덕에서 더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전제 조건은 우선 점차 영향력이 커져가던 기술적인 토대 위에 중상주의로 무장한 (군주)국가의 교육이었다. 베이컨은....'신학문'의 목적은...논쟁이 아니라 기술artes, 논쟁을 통한 적의 정복이 아니라 노동을 통한 자연의 정복이다....신의 명령("네 얼굴의 땀에서...)을 끌어온다. "마침내 어떤 부분에서 인간에게 빵이 제공되기 위해서는, 이는 인간의 살기 위해 강제되어야 하는데, 이는 다양한 노동을 통해서이다. (탐구가 아닌, 혹은 한가롭게 마술적인 의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39쪽)

 

홉스Hobbes는...모든 이론은 결국 활동actio이나 노동operatio으로 끝난다. (39쪽) 학문의 유익은 육체와 내적 운동을 측정하고, 짐을 움직이고, 배를 띄우며, 기계를 제조하는 등의 "기술"에 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홉스가 활동 내지 노고와 힘potentia를 서로 연결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적인 행동이 아니라 명상의 평온만이 접근하게 해주는, 기독교적 도덕철학에서 말하는 지고의 선을 방해받지 않고 늘 계속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 안에 존재하는 행복으로 대체했다. 이로써 힘/권력Macht는 인류학적 기본개념이 되었으며, 노동은 사회적인 기본개념이 되었다. (40쪽)

 

로크Locke는 노동이 사물을 변화시킴으로써 권리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아직 자연권의 교리적인 맥락 안에 있었다. 그러나 로크는...불변하는 자연질서라는 고전적인 전제와 단절하는... 두 개의 테제, 노동은 1)

사물 및 토지에 대한 본래적인 소유권을, 2) 사물에는 가치를 부여해 준다. "그이 육체의 노동, 그의 손으로 만든 작품은 당연히 그의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자연이 제공해 준 상태)와 혼합했으며, 그것에 자기 자신의 어떤 것을 연결해서 그것을 자기 재산으로 만든다....모든 사물에 가치의 차이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 노동이기 때문이다.(40쪽)...노동은 우리가 세상에서 즐기는 사물의 가치 가운데 매우 위대한 것을 만들어낸다."

  이와 함께 근대적인 노동개념의 역사, 즉 인간활동 서열의 최하위로부터 (더 이상 기독교적 근거가 없는) 노동이 해방되고, 특별하게 인간적인 능력으로 노동이 고양되며, 마지막으로 인간에게서 노동이 분리되고 추상적이면서 영향을 미치는 주체('노동이 만드는labour makes')로 상승되기 시작한다.

 

D. Hume은 "세상의 모든 사물은 노동에 의해 얻어지며 우리의 욕망은 노동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부르주아 사회가 지금까지처럼 더 이상 지배신분들을 대표하는 행위 안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인간과 자연의 투쟁으로서 노동이 사회적 기능 가치를 획득하면서 노동개념의 독립과정이 시작되었다. 노동개념은 빈곤과 결합되어 있던 상태에서 벗어났다. 노동개념은 그것이 연결되어 있던 '수고'와 '짐'으로부터도 벗어나기 시작했다. 

 

기술은 노동을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데카르트는 "모든 기술들을 용이하게 하고 인간의 노동을 줄이는" 경향을 언급했는데..이 생각 속에, 가능한 한 기술을 통해 고생으로서의 노동을 대체한다는 결론이 들어 있었다면, (41쪽) 이렇게 노동 부담을 완화시키려는 생각은 거꾸로, 노동을 긍정하는 기독교의 입장을 토대로 한다면, 노동이 덜 불가피하고 덜 고통스러울수록 기쁨이 더 클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동시에 '예술'과 '장사' 사이의 대립이 (양자가 모두 특별한 목적이나 활동방향과 무관하게 노동Arbeit이 되면서) '노동'과 '여가' 내지 '게으름' 사이의 대립과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새로운 것, '노동'과 '놀이' 사이의 대립이 등장했는데..."빈 시간leere Zeit" (칸트)으로 생각되던 한가함과는 달리 (노동과 놀이 모두) 시간 채우기로 여겨졌다. ... 노동에 있어서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의 요소가 사라지면서 '자연'과 '노동' 사이의 대립도...자연의 질서를 극복했다...노동 내지 예술과 모방이 아니라, 노동과 (인간과 자연 사이의) 중재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개념이 되었다.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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