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업, CP그룹 역
모든 문화의 영역에서 생산조건의 변화가 관철되기까지는,
하부구조의 변혁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는 상부구조의 변혁이 반 세기 이상 소요되었다.
그런 일이 어떤 형태로 벌어졌는지는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
이러한 근거에는 어떤 예언적 요구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무계급사회의 예술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 장악 이후의 프롤레타리아트 예술에 관한 테제에보다는
오히려 현재 생산조건하의 예술의 발전경향에 대한 테제에 상응한다.
예술발전경향의 변증법은 경제에서 못지 않게 상부구조에서도 드러난다.
그런 까닭에 예술발전경향 테제의 투쟁적 가치를 과소 평가하는 것은 그릇된 것일게다.
......
가장 완벽한 복제에도 여전히 하나의 것이 결여되어 있다: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
— 예술작품이 놓여 있는 장소에서의 일회적 현존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회적인 현존이 아닌 그밖의 어디에서도 역사는 이루어
지지 않았거니와, 예술작품은 그것이 존속하는 동안 그 역사에 종속되어 왔다.
그것[역사]에는 예술작품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작품의 물리적 구조에서 겪은 변화 및 예술작품이 겪었을 소유관계의 변화가 포함된다.
전자[물리적 변화]의 흔적은 화학적 혹은 물리적 방식의 분석을 통해서만 추적될 수 있거니와, 이 분석은 복제에서는 수행될 수 없다;
후자[소유관계의 변화]의 흔적은 전통에 관한 문제이거니와, 그것의 추적은 원작에 입각해서 출발해야만 한다.
......
그리고 복제기술은 복제품이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수용자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복제된 것을 현실화한다.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는 것, 그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그 과정은 징후적인데,
그것의 의미는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복제기술은, 그것을 일반적으로 표현할 때,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시킨다.
복제기술은 복제품을 다량으로 복제함으로써 일회적 산물[창작된 예술작품]을 대량의 산물로 대치시킨다.
그리고 복제기술은 복제품이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수용자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복제된 것을 현실화한다.
......
거대한 역사적 시대의 내부에서는
인간집단의 모든 존재방식과 더불어 인간의 감관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한다.
인간의 감관지각이 조직되는 종류와 방식 — 지각이 일어나는 매체 — 은 자연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제약되어 있다.
......
아우라의 붕괴는 오늘날의 삶에 있어서 점점 늘어나는 대중의 의의와 연관된 두 가지 사정에 근거한다.
즉, 사물을 공간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더 가까이 가져오는 것"이 현대 대중의 충분히 열정적인 갈망이고,
또한 그것의 복제의 수용을 통해 모든 소재의 일회성을 극복하려는 경향이 현대 대중의 갈망이다.
...껍질로부터 대상을 분리해 내는 것, [즉] 아우라의 파괴는 [우리 시대] 지각의 특징이거니와,
지각의 "세계 속에서의 동질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너무 커져서
그 지각은 복제를 수단으로 삼아 일회적인 것으로부터도 동질적인 것을 획득해낸다.
......
그러나 예술 생산에서의 진품성의 척도가 무효화된 바로 그 순간 예술의 전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되었다.
제의에 기초를 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자리에 다른 실천, 즉 정치에 기초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대신 들어섰다.
...예술작품의 수용은 다양한 강조점과 함께 이루어졌는데, 그것들 중에 두 가지 대극점이 두드러진다.
이 강조점 중에 하나는 제의적 가치에 놓여 있고, 다른 하나는 예술 작품의 전시 가치에 놓여 있다.
.....
화가의 상은 총체적인 것이고,
카메라맨의 상은 그 부분들이 새로운 법칙에 따라 결합되는, 여러 개의 단편들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영화의 실재 묘사는 비교할 바 없이 의미심장한데,
그 이유는 현대인이 예술작품에 대해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기계장치에서 벗어난 현실의 측면을
영화의 실재 묘사는 바로 기계장치의 집중적인 투입에 입각하여 드러내기 때문이다.
......
영화는 사물을 클로우즈업 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소품에 숨겨진 세부사항을 강조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카메라의] 독창적인 취급으로 진부한 환경을 탐구함으로써
한편으로 우리의 현존재를 지배하는 필연성에 대한 통찰을 증대시키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나고도 예상하지 못한 유희공간을 우리에게 확보해주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카메라에 나타나는 것은 눈에 나타나는 것과는 성질이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의식을 가진 인간에 의해 관철되는 공간의 자리에 무의식이 작용하는 공간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
현대인의 점증적인 프롤레타리아트화와 대중의 점증적인 형성은 하나의 동일한 사건의 두 측면이다.
파시즘은 대중이 폐지하고자 하는 소유관계는 건드리지 않은채
새로이 생겨난 프롤레타리아트화한 대중을 조직하려 하고 있다.
파시즘은 대중의 의사를 표현하게(그들의 권리를 찾게가 결코 아니라) 하는 데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다.
대중은 소유관계의 변화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파시즘은 소유관계를 보존하면서 그들에게 하나의 표현을 제공하려고 한다.
파시즘은 시종일관 정치적 생의 심미화로 귀착한다.
파시즘이 지도자에 대한 숭배 속에서 전락시킨 대중의 폭력에는
파시즘이 제의적 가치의 생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구의 폭력이 상응한다.
정치의 심미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한 점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한 점이 전쟁이다. 전쟁,
그리고 전쟁 만이 기존의 소유관계를 보존하면서
대규모의 대중운동에게 하나의 목표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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