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법당은 열려있다. 딱히 큰스님과 친분이 없더라도
옆문짝 하나 밀고 들어서면 수미단 위에 부처님이 앉아계시고
우리는 늘상 보단에 우리의 고민들을 하나 둘 얹어 놓고 나온다. 가벼워진다.
그리고는 밝다. 법당의 내부가. 그냥 한 채의 살림집같은 절집이다.
(최근 한 큰 스님을 뵈니, 일본 법당이 오히려 전통적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전의 모습과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고. 내전의 단이 높고 승려만이 접근 가능한 구조를 이름이다.)
열리거나 닫힌 게 어느 쪽이 더 좋다거나 하려는 게 아니다. 다름을 얘기한다.
시코쿠에서 만나는 일본의 절집과 한국 절집과의 문화적인 차이를.
(나의 이런 분석은 엄밀한 과학도 학문적 접근도 아닌, 그저 나의 느낌이다.)
시코쿠 순례길에 만나는 일본의 절집은 '집'이 아니다.
집 한 채는 '불당佛堂'으로 내부 공간인 내진(內陣)칸 과
퇴라고 봄직한 공간을 형성하는 외진(外陣)칸구조로 되어 있다.
(최근 동행이인 카페에서 얻은 답변은 '진陣'자가 구조적 의미 외에
일본어식의 모임의 뜻이 있음을 얻었다.)
공간의 내부에 어떤 신성한 공간을 다시 형성하는 구조이다.
당연히 내진의 기둥은 높다.
그 전면으로 신도들의 예불을 위한 '예당禮堂'을 배치한다.
(나무위키에서는 비가 잦은 일본의 특성상 불당의 전면에 예당을 붙여 신도들의 편의를 도모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곧 예당이 불당과 붙으면서 합쳐진 공간으로서의 외진을 형성한다고 설명되어 있으나
기능적으로는 맞는 표현일지 몰라도 구조적으로는 좀 다른 해석이 필요할 듯 하다.
불당의 마루 높이는 살짝 높은데 비해 예당은 외부에서 신발을 신은 채 예불을 볼 수 있다.
일부 사찰에선 외진까지 접근이 가능하나 외진까지 열린 곳이 많지는 않다.
물론 외진은 신발을 신은 채 예불을 볼 수 있다.
절마당에서 예당까지는 대개는 축선을 따라 계단을 배치하여 신성함을 더한다.
예당의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긴 하겠다만 외진을 거쳐 내진 기둥 아래의 부처는 저 멀리에 있다.
불당의 내진고주와 외진평주 사이에는 물림 공간, 퇴칸(退間)으로, 범접을 거부하는 공간의 나눔이 있어,
부처님은 어느 분이 되었든 저 멀리 어둠 속에 앉아 계신다.
옅은 불빛이거나 투광으로 인해 신성함은 살렸으되 사람과의 거리는 멀다.
신성함이란 그래야 하는지도.
일본의 신사는 그 활용이 유사하나 용어는 본전과 외전의 '전(殿)'으로 나뉜다.
당堂 혹은 진陣과 전殿에서 위계적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전래적으로 사찰이 스님들의 수행공간이고 신격화 이전의 명칭일지도.
(동행이인 카페에서의 답변은 절집의 신격화 혹은 위상이 신사와 비견된다는, 혹은 살짝 높았다는.)
문패없는 주막 같은 주렴에 관등성명이 있어야 어느 분인지를 구분을 할 수 있는
본존불을 모신 법당은 그래서 겹처마 구조를 보이기도 한다.
법당의 지붕과 예당의 지붕이 서로 맞붙은
혹은 법당의 높은 지붕 아래에 중층으로 예당의 지붕이 붙은 구조이다.
예당이 툭 튀어나와 입구로서의 구조로 보이기도 하지만.
좁게 열린 미닫이 격자문 뒤로
외진을 거쳐 내진 아래의 희미함 속에서 나마 중생을 구제하였을 부처를 본다.
이제 마땅한 설명이 될 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붙여둔다. 나의 기억을 검증하기 위해서.
나는 외진 바깥만 서성이다 시코쿠를 마쳤다.
일본의 절집은 내진 접근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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