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이제이아 벌린 - 낭만주의의 뿌리 (Ch.1, Ch.2) 관념이 관념을 낳지는 않는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3. 20. 21:11

Ch.1.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낭만주의의 중요성은 이것이 서구 세계의 삶과 사고를 근본적(이것을 통해 자연과 삶이 설명될 수 있는)으로 바꾼......

비단 사상사 뿐 아니라 의식과 태도와 활동의 역사, 또 윤리와 정치와 미학의 역사는 거의 대부분 지배적인 모형의 역사 (관념의 집합)다.....

무비판적으로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더 커다란 변화가 인간의식의 역사에서 일어나 왔음을......

당대의 상상력에 엄청난 지배력을 미치고, 그 결과가 다른 영역에까지도.....

낭만주의 운동이 그처럼 거대하고 급진적인 변혁이었으며....

영원불변한 심성구조로서의 낭만주의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일어나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변혁....(16쪽)

 

어쨌든 관념이 관념을 낳지는 않는 법이다. 어떤 사회.경제적 요인들에 의해 인간 의식에 중대한 변동들이 일어났음은 분명하다.

한쪽에는 산업혁명이 있고,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온 프랑스의 위대한 정치적 혁명이 있고, 마지막으로 낭만주의 혁명이 있다.....

즉, 1760년부터 1830년 사이에.....유럽인들의 의식에 커다란 단절이 생겼다......

1820년대부터 마음가짐이나 동기가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도가 그 효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 생겨난다.....

자기 신념을 배반하지 않는 고결한 인간들.....(26쪽)

 

낭만주의는 어떤 진부함으로부터의 탈출을 방해하는 인간 삶의 내부에서 움직이는 힘들을 이해하는 문제 (스탕달),

낭만주의는 산업혁명의 공포로부터의 탈출 (마르크스주의자),

인간내면에는 무한으로 치솟고 싶은 충족되지 않는 끔찍한 욕망과, 개체라는 비좁은 굴레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하는 열에 들뜬 갈망 (폰 슐레겔),

.....낭만주의의 특성, 미학적 주의들 모두 공통의 본질을 가지고 있음을 함축하지는 않으며.....이것은 관념과 언어를 혼동한 데서 일어난

가장 흔하며 가장 큰 오해를 낳는 실수....인간은 술병에 붙은 상표만으로는 취하거나 목을 축이지 못한다.....(37쪽, 조지 보아스, 러브조이의 제자)

 

Ch.2.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

서구 전통의 뼈대가 된 기본명제 3가지는

1) 모든 진정한(genuine) 질문에는.....신만은 대답을 알고있고, 만일 전혀 답을 알 수 없거나 그 답이 어떤 식으로든 원칙적으로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다면, 그 땐 질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기독교도와 스콜라 철학자들, 계몽주의와 20세기 실증주의 전통의 공통된 명제의 서구 전통의 뼈대를 낭만주의가 균열시킨 것 (42쪽)

2) 모든 답은 알 수 있고, 타인에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수단을 통해 발견되며

3) 모든 대답은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는 것이다.

계몽주의가 가져온 반전은

전통적 방법이나 도그마 또는 개인적인 자기성찰로는 답을 얻을 수 없고,

단 하나의 방법은 수학적 학문처럼 연역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에서처럼 귀납적으로,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물리학이나 화학 분야에서 찬란한 승리를 거두어낸 이런 (방법에 따른) 대답들이

훨씬 골치아픈 분야인 정치학이나 윤리학, 미학에 똑같이 적용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43쪽) 

......같은 방법으로 윤리학과 정치학과 미학의 세계, 그리고 여타 다양한 의견들이 부딪히는 무질서한 인간세계,

사람들이 서로화해할 수 없는 원칙의 이름으로 싸우고 파괴하는 이곳에도 마찬가지로 불멸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이었다....무엇보다도 계몽주의자들은 자연과학자들이 18세기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는데 사용했던

신뢰할 만한 방법, 곧 자연과학 그 자체를 통해 이러한 보편적 명제들은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48쪽)

자연과 인간이 지향하는 내면의 객관적인 이상 (기하학자들의 손을 거치면 사물의 이성적인 상호관계, 혹은 자연이 따르는 패턴)....

 

자기도취적인 계몽주의 이론은 이미 계몽주의 내부에서부터 균열되었다.

 

인간은 어디서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몽테스키외) 인류가 동일한 것-행복.만족.조화.정의와 자유-을 추구할지라도

상황이 다르면 이 필수적인 것들을 얻기위한 수단도 달라진다는 것 뿐.....그것은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제도, 영원한 가치가 있어,

그것이 장소와 대상을 초월하여 적용된다는 명제를 수정하게 하였다. (56쪽)

 

인과관계라는 것이 사물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는커녕, 어떤 필연성도 없이 규칙적인 방식에 의해 연결되어 있을 뿐

우리가 인과관계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인지를 의심하였으며,

또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 확실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없듯이, 우리가 진정 알 수 있는 것인지를 의심 (흄, 58쪽).....

우리는 세계를 신념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흄은 분명 합리주의의 이상을 깨뜨렸다.

 

계몽주의에 대한 반격은, 어쨌던 뒤떨어진 촌구석인 독일에서 (독일의 지방주의와 세계적 중요성에 대한 감각의 결핍.....)

.....낭만주의의 진정한 뿌리인, 루터주의의 한 분파인 경건주의운동인,

영적생활을 강조하고, 지식을 경시하며, 고통받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이 조물주와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중점을 두는.....깊이로의 침잠이 일어났다.(63쪽)

 

헤르더의 역사서술이거나, 괴테의 문학, 키에르케고르에 미친 영향 등으로 계몽주의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의 인물 요한 게오르크 하만이었다.

하만은 과학이 인간에게 적용되면 관료화를 가져올 뿐이며,

하만에게 창조는 가장 신성하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으며, 분석할 수도 없는 독자적인 행위로, 한 인간은 창조를 통해 자연에 자신을 각인시키며,

자신의 의지를 솟구치게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며, 어떤 장애물도 허용하지 않는 영혼 깊숙한 곳의 언어를 끄집에 내었다.(72쪽)

"셰익스피어라는 신의 성경에서 떨어져 나온 책장들이 시간의 폭풍우에 흩날리는 자유국가에서,

한낱 한 인간이 어떻게 감히 그런 (미학적 십계명을 어기는) 일을 하겠는가?" 열정, 이것이야 말로 예술이 소유한 것이며, 설명할 수도 분류할 수도 없는 것이다.

 

(계몽주의자인 맨델스존을 비판하며) 곤충학자가 나비를 다루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 가련한 나비를 잡아

핀으로 고정시키지만, 핀에 꽂히는 것은 점차 그 정교한 색이 바래가는 죽은 시체일 뿐이다. (괴테, 73쪽)

 

* 반복된 학습과 훈련과 그를 통한 선, 혹은 해답으로의 진전은 고전철학의 주요한 관심사일 것이다.

플라톤의 '잘(Well)'이라든가 <향연>에서 보여주는 소크라테스의 준비된 '연습'이라는 것 역시

서양철학에서의 합리주의의 근간일 것이다.

낭만주의가 이러한 합리성, 혹은 전일적인 통일성에 대한 반론으로 유연한 인간사를 끌어내었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