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쟝 자크 루소 -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3. 17. 00:25

장 자크 루소 - 인간 불평등 기원론 (김중현 옮김, 펭귄클래식 코리아)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


자연이 인간들 사이에 부여한 평등과

인간이 그들 사이에 생겨나게 한 불평등에 관해 고찰하면서,

그 둘 (평등과 불평등)이 적절히 결합되어 자연법에 가장 근접하고...... (헌사, 제네바 공화국에 바침)


인간 그 자체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

세월과 사태의 연속이 인간의 본원적 구조에 야기했음에 틀림없는 온갖 변화를 거치면서

자연이 만들어놓은 상태 그대로의 자신을 알지 못하게 되어,

자신의 본질에 속한 것과 상황이나 진보가 그들의 원시상태에 가하거나 변화시킨 것을 분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


우리는 철학자를 인간으로 만들기 전에 인간을 철학자로 만들 필요는 없다.

타인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지혜의 뒤늦은 충고에 의해서만 부추겨지는 것은 아니다.

연민이라는 내적인 충동을 뿌리치지 않는 한 인간은 타인에게도, 나아가 어떠한 감성적 존재에게도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자기 보전의 문제가 걸려 있어서 자신을 우선시해야 하는 정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루소 저자 서문)


나는 인류에게서 두 종류의 불평등


- 자연적 혹은 신체적 불평등 - 자연에 의해 결정되는 나이.건강.신체적인 힘과 정신 혹은 영혼의 자질의 차이

- 도덕적 혹은 정치적 불평등 - 인간들 간의 동의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용납된,

                                          부자이거나 존경을 받거나 세력이 있거나 복종시키거나 하는 특권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관한 논문)


한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것이야."라고 말할 생각을 해내고,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만큼 순진하다고 생각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사회의 실제 창시자다. (2부)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

혼자서 두 사람분의 양식을 가지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어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넓은 숲은 인간의 땀으로 적셔야 할 아름다운 들판으로 변화되었는데,

그 들판에서 사람들은 곧 수확과 함께 예속 상태와 궁핍이 싹트고 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88쪽)


자연법에 기원을 두는 권리와는 다른 소유권을 낳았다.....

우리의 힘을, 우리 자신에게 불리하게 하는 대신

사려깊은 법에 따라 우리를 다스리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보호하고 방어해주며...... (96쪽)


사회와 법의 기원은 그런 것이었거나 그런 것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사회와 법은 약자에게는 새로운 구속을, 부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하여

자연적 자유를 아주 파괴해 버러고

소유와 불평등의 법칙을 영구히 고착화 시켰으며,

교활한 횡령을 확정적 권리로 만들어 몇몇 야심가를 위해 인류전체를 노동과 굴레와 비참에 예속시켰다. (97쪽)


불평등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없으나

우리의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발전으로부터 그 에너지를 얻어 성장하며,

마침내는 소유권과 법의 제정에 의해 항구적이 되고 합법화된다는 결론이..... (118쪽)


* 사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으며

루소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몇몇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언제 날을 잡아서 그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나타난 루소의 여성관이란 주제로 톺아 보아야 할 듯하다.

'관계에서 존재로' 혹은 그 반대의 불평등의 구조화 아래에서 루소의 여성관은 사뭇 이채롭니다.

절제된 법 (불평등의 해소로서)을 일정하게 옹호한 것으로 보이는 루소가 

여성의 역할을 그러한 법제의 균형과 지렛대로 여성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는 점은 

페미니즘과 상충한달지 혹은 그 반대일지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치 않다.

한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가장 훌륭한 아버지로부 애정어린 가르침을 받은 사랑스러운 아들......은 인간에게 아무리 악에 대한 성향이 있다 할지라도

애정이 담긴 교육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헌사)


다른 절반을 행복하게 해주며, 그들의 친절과 지혜가 평화와 미풍양속을 유지시켜 주는 공화국의 그 소중한 절반인 여성들을.....

우리 남성들을 다스리는 일이 바로 당신들 여성의 운명일 것입니다.

결혼생활에서만 행사되는 당신들의 정숙함 힘이 오로지 국가의 영광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만 쓰이게 할 때 우리는 행복할 것입니다.......

상냥하고 순결한 영향력과 말쏨씨로 나라 안에서는 법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화합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것과,

불화가 생긴 가문들을 행복한 결혼으로 화해시키는 것은 당신들의 몫입니다. (헌사)


암컷을 소유하기 위한 몇몇 동물들의 싸움이....(인간의 경우) 다른 동물들을 사라지게 하지 않기에,

우리는 적어도 그 싸움이 인류에게 해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이 사회에서보다 자연상태에서 피해를 훨씬 덜 입힐 것이라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특히 풍습이 아직 상당히 유지되고 있어서 애인들의 질투와 남편들의 복수가 매일 결투와 살인과 그보다 더 심한 일들을 야기하는 나라들이나

변치않는 정절의 의무가 불륜의 사랑을 양산하는데 이용될 뿐인 나라들,

또는 순결과 정조에 관한 법률조차 방탕한 행위를 필연적으로 늘어나게 하고 낙태를 증가시킬 뿐인 나라들 보다는 말이다. (1부)


* 위 논의의 해석으로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문을 보아야겠지만......)

자연법 혹은 평등의 시대를 벗어난 불평등 사회의 모습으로서,

풍습이 상당히 유지되어 질투와 복수가 만연하고, 변치않는 정절의 의무로 불륜을 양산하며, 순결과 정조의 법률조차 방탕한 행위를 늘어나게 하는 사회를

루소는 상정하고 있다. 언뜻 여성관 혹은 결혼 일부일처제에 대한 루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순결과 정절을 여성에게만 적용하였던, 또 적용시키고 있는 한국적 문화로 이 구절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보인다.)


인간의 마음의 최초 발달은 공동의 거처에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이들이 모여 살게된 새로운 상황의 결과....

가족은 상호 애착과 자유가 유일한 구속이었던 만큼 더욱더 결속된 작은 사회가 되었다.

바로 그때 양성의 삶의 방식에 최초의 차이가 생겨났으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여성은 집안에 더 틀어박혀 있게 되었으며 오두막집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2부)


* 소유가 없는 곳에 부정이 있을 수 없다는 존 로크의 인용으로 이해하자면,

위 구절은 여성을 소유물로 본 시점(혹은 그런 소유가 형성된 원인으로부터)에서부터 양성의 불평등이 시발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결속과 소유의 확대가 노동을 필요로 하는 불평등의 사회로 변환되고, 또 그 결과물에 대한 착취로 이어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루소의 표현대로, 수확과 함께 예속상태와 궁핍이 싹트고 커가는 상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