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육조단경 (2) - 경계에 갇힌 생각을 버리고 본래의 마음을 관조하라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5. 23. 01:05

한계를 안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뛰어 넘거나 혹은 자신이 그 경계에 머물고 있음을 깨닫기는 어려운 법이다.

칸트의 표현대로 순수이성으로나, 실천이성으로나 혹은 판단력으로서 이러한 경계를 알고 한계를 명확히 한다면,

한계와 경계에 갇힌 생각 변견(邊見)을 버리고 智慧로서 觀照하여 스스로의 본래 마음을 알아 無念의 경계 혹은 경지에 이를까나.

한계와 경계를 보는데는 智慧와 修行이 함께한다는 대목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생활의 실천 종교로서 禪의 뗏목을 타고 건널 일이다.

 

無念法者 見一切法 不著一切法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어떤 법에도 집착하지 아니하고,

             偏一切處 不著一切處                 모든 곳에 두루하되 어떤 곳에도 집착하지 아니하고,

             常淨自性                                 항상 스스로의 성품을 깨끗이 한다. 

 

卽是見性 內外不住 來去自由        바로 스스로의 품성을 보게되면 안팎으로 머물지 아니하고 오고 감에 스스로 말미암아져,

能除執心 通達無碍                     능히 집착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고,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心修此行 卽與般若波羅蜜經          마음으로 이러한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경과 더불어

本無差別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나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나 반야의 지혜가 있다는 점은)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莫百物不思 常令念絶                   (스스로의 품성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온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아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짐짓 생각을 일어키지 않고 끊어려 함은 心源을 비추어 볼 수 없으며 : 無記)

卽是法縛 卽名邊見                      이는 곧 법에 묶이는 것이고 곧 모든 경계에 집착하는 邪見일지니.

 

** 지눌 스님이 육조단경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는 구절을 다시 옮긴다.

 

無者 離二相諸塵勞                      없음이라는 것은 두 개의 모양과 진노망상을 여읜다는 것이고

念者 念眞如本性                         생각이라는 것은 진여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眞如 是念之體                            진여라는 것은 곧 생각의 본체요 

念是 眞如之用                            생각이라는 것은 진여가 나타내는 것이다.

 

自性起念 雖卽見聞覺知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나

不染 萬境而常自在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고 항상 그대로 자유로운 것이다.         

 

 

心地無非    自性戒                      마음 바탕에 그릇됨이 없음이 자기 성품의 계(戒)이요,

心地無亂 是自性定                      마음 바탕에 어지러움이 없음이 자기성품의 정(定)이며,

心地無痴    自性惠                      마음 바탕에 어리석음이 없음이 자기성품의 헤(惠)이다.

 

說不立 如何                               (자성의 깨달음을 얻어면 계.정.혜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自性 無非無亂無痴                       자성이란 그릇됨도 없고, 어리러움도 없으며, 어리서음도 없으니

念念般若觀照 常離法相                 생각생각마다 큰 지혜로 관조하여 항상 법의 모양(相)을 여의게 된다면

有何可立                                    무엇을 세우겠는가

 

自性頓修 入有漸 此以不立             자기의 성품을 단박에 닦을지니, 세우게 되면 점차(漸次)로 있게 되므로 이를 세우지 않느니라.

 

心行 轉法華 不行 法華轉               부처의 지견 (佛知見)을 깨우쳐 마음으로 행하면 법화경을 굴리게 되는 것이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心正 轉法華 心邪 法華轉               마음이 오롯하면 법화경을 굴릴 수 있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自身心見 莫著外法相                    자신의 마음으로 보도록해야 하며, 바깥 법의 모양(相-사람이 분류하여 나누어 놓은 것)에 집착하지 말지어다.

 

吾亦見 常見 自過患 故云亦見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기에 본다고 한 것이고,

亦不見者 不見天地人過罪              내가 또한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기에 그러한 것이다.

所以亦見亦不見                           그런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고 한 것이다.

 

向前 見不見 是兩邊                      앞전에 내가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고 한 것이 곧 양변이고,

痛不痛 是生滅                             (내가 너 神會의 머리를 때렸을 때)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고 대답한 것이 곧 생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