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의식주를 버린 사람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2. 2. 10. 16:11

우리가 버린 것이 어디 뿐이겠냐마는.

샤머니즘적인 린치를 의미했던가, ‘천벌받을 이란 표현도 자본과 시장에 묻혀버렸고,

우리가 짓던의식주까지 버린 아니던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입성 치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나,

먹는 것이야 거렁뱅이 꽁보리밥에 소금과 간장이 전부였던 듯하고,

(고려사에서조차 구휼을 위해 , 조와  소금과 간장을 내렸다고 되어있을 정도였으니.

 이를 부정할 있다면 그대 조상은 양반이리라. 2% 정도에 들려나?)

입식 탁자가 좌식 구들장으로 바뀐 것이리라.

이런 디테일을 바꾸어낸 조선의 혁명가들은 세련된통치자였다.

(사실 혁명이란 표현은 그 본래의 뜻과 배치되기에 그네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정의이겠고,

세련되었다는 것은 통치기술이 적어도 끗은 앞섰다는 의미일 뿐이지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압축성장이라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국가주도 자본주의의 아름다운 결과물로서 의과 주를 버리게된다.

(딱히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변했다고 밖에.)

 

이제 자라나는 세대를 보고있자면,

먹을 거리에서도 앞서의 버림은 다르지 않다.

더이상 된장국과 김치가 궁금하지 않아진 셈이니.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민족의 옷을 버린 나라는 흔치 않아 보인다.

기실 조선의 옷이란 양반에게는 노동복이 아니었겠거니와,

노비와 소작농에게는 거적때기에 고 매듭으로 몸의 몇 군데를 가리는 정도에 불과했으리라.

요컨대 옷의 본질에서 벗어난 옷이랄 수 밖에.

(해서, 백의민족이란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염색 조차도 비용이 아깝거나 불가능했을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므로.)

 

한복 논란을 보고있자면,

스스로 버린 것을 남이 낼름 주워다 먹으니까

애시당초 것이었는데, 하며 아파 하는 꼴로 비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를 아파하는 천박한 족속들은 

소득수준 3만불에 육박하는 현재에도 별로 바뀐 것이 없고,

(계급간 부의 불평등으로 3만불이란 수치가 지닌 자본적 의미와 그 외연으로서의 확산은 무의미하겠지만.)

스스로 가진 무언가에 안도하고 그를 위안 삼아

외려 계급 내에서 안주하고 계급간의 경계는 더욱 높아지는 느낌이다.

 

버린 것을 놓을 안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겠다만.

의식주를 버린 민족이 다음에 버리게 될 것은 언어일 터이고.....

그럴 경우라면 우리는 정서의 대부분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상의 징검돌을 잃게 될 것이다.

'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뱀장수 사설  (0) 2022.03.24
나의 무속 시대  (0) 2022.03.23
모순을 보는 시각  (0) 2021.12.02
나만 몰랐던 중국, 의 수준  (0) 2021.11.25
약발에 대한 짧은 생각 - 잔치는 끝났다  (0) 20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