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력1-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프로메테우스 출판사
<수수께끼의 인물 헤밍웨이>
(440쪽) 영화의 전성기에 태어나 케네디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해에 자살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는 반전문학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쓰고,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에 반대하고, 반파시즘 연설을 하고, 쿠바의 카스트로 수상과 친하게 지내는 등의 행동으로... 지금도 미국 현대문학의 기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대문호의 행동을 역사상의 날짜에 견주어 추적해 보면...
제1차 세계대전 즈음, 헤밍웨이는 전쟁에 굶주린 야수처럼 유럽으로 건너가 야전군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영화는 KKK단을 예찬한 <국가의 탄생>이었는데... 이런 헤밍웨이가 어느 정도 주목을 끈 것은 1926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한 이후부터였다.... 1929년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했다....
이듬해에 반전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공개된다. 당시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이 맹렬하게 대두하여 '모건상사'가 양국에서 열렬하게 자금을 원조하던 중이었다.
(441쪽) 우연의 일치처럼 한 영화는 독일을 배경으로, 또 다른 한 소설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비슷한 시기에 각광을 받은 이유가 뭘까? 걸작이라는 후광을 걷어내고 <무기여 잘 있거라>를 다시 읽어보면...
... 하지만 헤밍웨이는 갑자기 대문호로 등극했다. 당시의 헤밍웨이는 JP 모건과 마찬가지로 낚시광이었다.... 헤밍웨이의 또 다른 취미는 라이언 루스벨트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맹수 사냥이었다. 그가 집필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무엇을 죽이든, 죽이는 건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물은 결국엔 모두 죽을 수밖에 없으니 깨끗하게 죽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렇게 인기가 오른 헤밍웨이는 1935년 좌익지 <뉴마세즈>에서 원고 의뢰를 받고 플로리다를 휩쓴 허리케인의 대재앙에 대해 글을 썼다. 주제는 당시 캠프에서 재앙을 당한 노동자들에게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퇴역군인으로서, 헤밍웨이가 붙인 제목도 <누가 퇴역군인을 죽였나?>였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런 코멘트를 달았다.
(442쪽) "그 잡지에 기고했다고 해서 빨갱이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의뢰를 받았기에 써 주었을 뿐이다."
그런 그가 마침내 쿠바 내란을 배경으로 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1937년에 발표하여 인간 사회의 불평등을 생생하게 호소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고독하고 가난하지만,... 용맹 무쌍하게 사회와 맞부딪친다. 심지어 폭력을 휘둘러 돈을 버는 것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혁명 따윌랑 개한테나 줘 버려." 그는 이렇게 내뱉으며 때마침 꿈틀대고 있던 쿠바혁명을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모건상사가 전화와 전기의 90%를 장악하고, 철도. 설탕. 은행을 모두 독점하여 쿠바를 지배하던 그때, 헤밍웨이는 왜 그 체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주인공으로 하여금 내뱉게 했을까? 게다가 이 주인공의 이름이 '해리 모건' (험프리 보가트 분)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
그해 6월... 헤밍웨이는 그 유명한 반파시즘 연설을 했다.... 호전적이며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추한 유대인'을 창작한 작가가 이번엔 반파시즘 연설을? '작가와 전쟁'이라는 제목의 연설은... 실상은 스페인의 프랑코를 반대하는 연설이었다. 미국 국내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 독재와 유대인 사냥이 문제가 되고 있을 때, 헤밍웨이는 느닷없이 프랑코를 공격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그는 즉시 펜을 들고 <누구를 위하여 (443쪽) 종은 울리나>를 발표했다.... 스페인의 압제자를 미국인 교수가 타도한다는 내용... 전쟁 중에 서둘러 영화화되었고...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심문에 나가 빨갱이 사냥에 앞장선 영화연맹의 회장 샘 우두가 게리쿠퍼 (영화주연)를 친구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이 샘우드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감독이었다는 관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헤밍웨이의 표상에 석연찮은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이 작품은 당시 미군 병사들이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곧잘 감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인 1952년, 그는 다시 쿠바를 소재로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다.... 이 작품의 주제는 혁명과 무관한 한 어부의 인생철학이었는데, 때는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 하지만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서 뒤에서 무언가 획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억측하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 있다.
... 헤밍웨이는 혁명 후에도 쿠바를 방문하여 카스트로와 친밀하게... 그 이유는 쿠바에 있는 자기 농장이 몰수당하지 않도록 하게 위해서였는데... 한편 주식과 채권을 산더미처럼 가진 헤밍웨이의 모습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444쪽)... 기실 헤밍웨이를 비롯한 미국인들보다 먼저 쿠바의 이권을 갖고 있던 것이 스페인의 파시스트들이었으므로, 그 역시 쿠바에 혁명의 징조가 보이던 시대에 자기 재산을 어떻게든 지키며 그것을 정당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스페인의 프랑코는 악이다"라는 발언으로... 그리고 이 연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프랑코를 타도하는 게릴라의 모습, 곧 미국인의 모습이었다. 또한 무엇보다 증권 더미에 파묻힌 헤밍웨이 있던 것이다.
... 영화 <국가의 탄생>, 팬아메리카 항공의 린드버그, 빨갱이 사냥영화 연맹, 쿠바혁명과 농장,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폭력적인 언행, 구태여 해리 모건이라는 이름을 붙인 소설의 주인공, 전쟁의 고취와 갑작스러운 반전 연설, 그리고 모건 상사와 주식, 채권 뭉치...
... 그러고 보니 모건 가의 한 사람이 설립한 (445쪽) 명문 예일대학에서 최초의 학생이 헤밍웨이 가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 국제사무기기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이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 IBM은 결코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이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중에 유니버크를 낳은 병기회사 레밍턴랜드와 특허를 교환하던 군수업체였을 뿐 아니라, 당시 원폭제조에 관여하던 벨전화와는 기술협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무려 350% 성장이라는) 이 IBM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레밍턴랜드나 벨전화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모건 상사였다는 점이다.
(446쪽)... 문제의 IBM을 창립한 인물 톰왓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차남이 아서 왓슨인데, 그는 IBM의 국제비즈니스 부문으로 설립된 IBM 세계무역회사에서 사장과 회장을 역임... 그런데 이 아서 왓슨의 처녀 시절 이름이 바로 앤 캐롤 헤밍웨이, 즉 문호 헤밍웨이의 친동생이었다. 헤밍웨이 가와 혼맥으로 엮인...
... 기실 나치스 최고 간부에게 자금원조를 약속하였던 기업단의 대표자가 바로 IBM의 톰 왓슨이었다. 이 공적으로 왓슨은 히틀러로부터 십자공로상을 받았는데, 그 뒤 1년 뒤에 찰스 린드버그와 헨리포드도 십자공로상을 받는다...
(447쪽) 헤밍웨이가 의심스러운 이유도 그의 '반파시스트 연설'이 하필이면 톰 왓슨이 파시스트로부터 십자공로상을 닫기 바로 한 달 전에 있었다는 점이다. 시기와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헤밍웨이는 세상의 눈길을 온통 프랑코에게 쏠리게 함으로써 전세계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악행을 잊게 만드는 역할을 맡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 앞서 언급한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집행에 대해 헤밍웨이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반대운동을 펼친 것처럼 기록한 책들을 꽤 볼 수 있는데, 사실상 그는 적극적인 행동읕 거의 하지 않았다....(미국문학계의 최고봉이며 할리우드의 인기 있는 명사였던 헤밍웨이의 이름을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려 했던 시절...) 사실 그렇게 읽히도록 조작한 자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전기를 살펴보면 그 어떤 책에서도 기업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IBM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의로 회피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그를 이용한 자들이 (448쪽) 분명히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1954년, 그런 헤밍웨이의 머리 위에 노벨상이라는 훈장이 주어졌다.
... 헤밍웨이가 사망할 때까지 20세기의 노벨상은...(449쪽) 오른손으로 평화의 깃발을 든 척하곤 왼손으로 전쟁을 선동한, 그야말로 '지킬과 하이드'가 분명한 인물들이다. 이런 특징은 훗날 키신저가 베트남 전쟁의 A급 전범이연서도 파리평화조약을 체결했다며 역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시대까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참으로 교활하리만치 노벨평화상 수상자 명단에 종종 마틴 루터 킹 목사나 폴란드 자유노조의 바웬사 등의 인물을 끼워 넣음으로써 역사 기록에는 전범들이 이들과 동격으로 격상되었고, 노벨상은 한층 신뢰와 권위를 부여받는 효과를 연출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보면 노벨평화상이란 것도 결국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케인스경제학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짙어진다.
***
이 옮김이 김대중 대통령이나 한강 작가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다만 자본이 어떻게 역사를 장악하고 있는가에 대한 한 견해이든 혹은 사실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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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헤밍웨이에 대한 '존경' 혹은 '짝사랑'이 얼마나 단편적인가를 보여주어 씁쓸하다. 우리들의 '짝사랑'은 대부분 '자본'이 만든 것일지도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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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역시 절판이라....자본이 어떻게 혁명을 잠식하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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