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하루에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이 소식의 이면에 나는 조금 씁쓸하다.
망쪼가 들었단 밖에 달리 설명되지 않는 여기 이곳에서,
그런 망쪼의 흐름을 3년정도 늦춘달까.
좋을 일도 더 나을 일도 없는 땅에서,
그이의 수상 소식이 대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나,
문제는 그런 것들이 유도하는 곡해의 와류에서
누군가는 희망을 변곡점을 보려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도 아니려니와
깊은 사유와 철학적 기반의 산물도 아닌 한에서,
이 역시 자본에 몰입된 문화적 천박함을 가리는
잠시간의 허상으로 작동할 것이기에 그렇다.
내가 모비딕을 읽었을 때,
미국문화가 유럽을 넘어섰다고 느꼈던
그런 전율이
이제 그이의 글을 밀어왔던 또 그리고 앞으로 밀고 나갈 많은 이들의 글에서
오늘을 자양으로 삼아 알불로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수상의 축하에 이런 소회라니.
여성으로서의 수상이라 축하한다는
누군가의 축사에 나도 한 몫 거든다.
감사함을 넘어 내일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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