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혹은 그의 계급이 한국전쟁으로 리셋되었다는데 동의한다면,
계급사회의 징후가 이미금 완연하다는 데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이곳을 만든 것들은 한국전쟁의 리셋과 이로 인한
조선 계급사회의 붕괴 (유교와 양반 귀족 가문을 포함하여),
교육열과 부동산의 획득 가능성과 이에 기반한 계층이동의 열림,
(하필이면 혹은 당연히도) 일본이라는 기술선진국과 중국이라는 노동 집약국과의 적절한 이격거리로
기술적 산업화가 가능했던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의 이완이 복귀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부동산과 금권력에 기반한 계급화로의 급속한 회귀,
보수도 진보도 없는 사상적 토양과 양당제라는 이름의 붕당 정치체제,
노동집약과 저임금을 탈피한 중국 산업구조와의 중첩(과 일본의 제한적 쇠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산업구조는 이전의 국제관계에서 최적화된 산업구조에 머무른 안주,
섬, 혹은 대륙과 단절된 경제구조의 정체 혹은 고착 등
한 사회가 몰락의 길로 가는 데는 많은 사유가 있을 수 있겠다만,
몰락된 이후라면 단순해 보일 것이다.
그것은 조선 붕괴의 흐름과 큰 맥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선은 섬이 아닌 상황에서 섬을 자처하였다면,
이제 우리는 섬인 상황에서도 섬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상황에서나 사상적 처지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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