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화천의 기억 - 천일의 맹세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2. 12. 4. 19:17

짧은 후보생 시절을 끝으로 나의 군 생활은 끝났다.

그 곳에서 배운 노래 한 소절. [천일의 맹세]였다.

청춘도 묻고, 사랑도 묻고, 쉬 떠나보내지 못할 시간 마저 묻어버린 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던 노래.

20년도 더 된 듯한 그 노래가 오늘 빗속에서 생각이 난다.

현장 양철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는 소낙비 소리에.

당시 화천은 겨울이었다.

눈발이 투광등 불빛 속에서 빗살 무늬를 그리던 그날,

김 일병의 노래는 구슬펐다.

나는 끝내 그가 여자를 잃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사랑 하나 쯤은 나도 잃었으니까.

그게 스물 둘의 청춘이기에,

내 나이 스물 다섯이라해도

그리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던 날이었기에.

 

천일(千日)의 맹세

이름은 밝히지 못하겠지만 내 동갑 여자

얼굴은 귀엽고 눈이 맑았던 사랑한 여자

스물 둘 가는 겨울 눈길 걸으며

난 너를 난생 처음 사랑한다던

 

이듬해 깎은 머리 나라를 위해

무엇보다 슬픈 건 너와의 헤어짐

무정한 기차 떠나갈 때에

천일 동안의 슬픈 이별을

울며 손 놓던 너의 모습이

기다리겠다던 너의 맹세

 

믿고 또 믿고 참고 또 참아

제대의 그날을 네앞에 설 날을

 

헤어진 세월 끝이 왔건만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너는 도대체 누구 때문에

사랑을 잃고 사랑 버리고

 

난 돌아 왔건만 넌 남의 여인

난 돌아 왔건만 넌 남의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