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후보생 시절을 끝으로 나의 군 생활은 끝났다.
그 곳에서 배운 노래 한 소절. [천일의 맹세]였다.
청춘도 묻고, 사랑도 묻고, 쉬 떠나보내지 못할 시간 마저 묻어버린 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던 노래.
20년도 더 된 듯한 그 노래가 오늘 빗속에서 생각이 난다.
현장 양철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는 소낙비 소리에.
당시 화천은 겨울이었다.
눈발이 투광등 불빛 속에서 빗살 무늬를 그리던 그날,
김 일병의 노래는 구슬펐다.
나는 끝내 그가 여자를 잃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사랑 하나 쯤은 나도 잃었으니까.
그게 스물 둘의 청춘이기에,
내 나이 스물 다섯이라해도
그리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던 날이었기에.
천일(千日)의 맹세
이름은 밝히지 못하겠지만 내 동갑 여자
얼굴은 귀엽고 눈이 맑았던 사랑한 여자
스물 둘 가는 겨울 눈길 걸으며
난 너를 난생 처음 사랑한다던
이듬해 깎은 머리 나라를 위해
무엇보다 슬픈 건 너와의 헤어짐
무정한 기차 떠나갈 때에
천일 동안의 슬픈 이별을
울며 손 놓던 너의 모습이
기다리겠다던 너의 맹세
믿고 또 믿고 참고 또 참아
제대의 그날을 네앞에 설 날을
헤어진 세월 끝이 왔건만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너는 도대체 누구 때문에
사랑을 잃고 사랑 버리고
난 돌아 왔건만 넌 남의 여인
난 돌아 왔건만 넌 남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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