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s is essentially a tragic age, so we refuse to take it tragically.
The cataclysm has happened, we are among the ruins, we start to build up new little habitats, to have new little hopes.
It is rather hard work: there is now no smooth road into the future: but we go round, or scramble over the obstacles.
We've got to live, no matter how many skies have fallen.
This was more or less Constance Chatterley's position.
The war had brought the roof down over her head.
And she had realised that one must live and learn.
우리가 처한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의 시대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극의 시대이기를 거부한다.
대격변이 일어난 후, 우리는 폐허의 가운데 있으나, 작지만 새로운 희망을 위해 작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것은 차라리 어려운 일이다. 미래를 향한 편한 길이란 지금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거나 장애물을 건너야 한다.
어쨋거나 우리는 살아야만 한다, 얼마나 많은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이것이 채털리 부인의 처한 어느 정도의 입장이었다.
1차 세계 대전으로 지붕이 그녀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고,
그리고 그녀는 사람이란 살아가야 하고 또 그 가운데서 삶을 배워가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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