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마을로 간 한국전쟁 - 국가 권력이 만든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8. 15. 21:08

마을로 간 한국전쟁, 박찬승, 돌베개, 2010


한국전쟁은 남북의 국가권력이 각 마을 공동체에 깊숙이 개입해 들어와

공동체를 사실상 해체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쟁 상황에서 각각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충성 서약을 최말단의 마을 주민에게까지 요구함으로써...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을 위해서...마을 주민들에 대한 확실한 파악이 절대적으로 필요...

...전쟁 이후를 대비한 치안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총론)


저자의 해석과는 별개로 나는 다음 몇 가지 지점에 주목하고 싶다.

1. 인구의 2%가 토지의 70% 수준을 점유하여 소작과 노예가 만연된 사회적 상황이 그 첫번째이다. (72쪽에서)

2. 자생적인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가 자작농과 지주계급의 지식인에게서도 발생할 정도로 사회적 불균등, 혹은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인내가 불가한 사회였던 것이 그 두번째이다.

결론적으로 조선을 포함하여 이후 식민시대까지 한반도는 노예제 사회였다고 보아야 한다.

나의 결론은 조선은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의 양반이 각각의 마을을 지배하는 가문사회에 가깝고,

그것을 국가라고 칭하기에는-국가라는 폭력구조가 존재했음에도-인구의 구성이 턱없이 비상식적인 양반씨족 부락의 연합체로 보여진다.

근대적 자본주의의 내재적 맹아에 대한 논의도 사실은 사후 해석에 의한 견강 부회에 가깝고-실제 자료에 근거한 분석이 아니란 점에서-

조선이라는 국가(?)의 기능 역시 문서상의 레토릭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전제를 상정한다면,

한국전쟁은 외부에서 강제된 근대적 국가화의 한 단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더하여 그 곳에는 경찰 보안 권력으로 위장한 친일파의 자기변신과 2% 양반의 재산보존 욕구가 만든 비극이 마을의 작은 전쟁이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