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현대일본의 역사 (1) - 급조해낸 정체성, 일본인이라는 관념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9. 9. 00:00

현대일본의 역사 - Andrew Gordon, 문현숙 김우영 옮김, 이산



(머릿말)

이 책의 제목 A Modern History of Japn (일본에 있어서 근대사)는 근대성과 상호연관성이라는 두 테마의 중요성을 표현하고 있다.

...Modern Japanese History (근대일본사)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제목을 붙인다는 것은 일본적 특수성이 서술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고,

'근대'라 불리는 시대에 우연히 생긴 특수한 '일본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의 눈이 향하게 한다는 뉘앙스를 가질 것이다.

이 책은 일본적인 것과 근대성 사이의 그런 균형을 바꾸고 싶다는 목적에서 A Modern History of Japan을 채택했다.

여기에 일본이라 불리우는 장소에서 우연히 전개된 특수한 '근대'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이른바 일본적 전통이라 불리는 것이 갖고 있는 특징의 많은 부분은 그 근원을 밝혀보면

근대가 되고 나서 신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상호연관성과 근대성이라는 두 가지 테마)


(지리와 기후)

역사 체험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대륙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져 있다는 것은 오늘날 일본 열도의 주민들에게, 즉 근대 이전의 주민과 그 이후 가장 최근의 주민의 양쪽에게

아시아 대륙의 여러 문화와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서 양면적인 감정을 갖게하는 작용을 하였다.

...중국으로부터 계승한 무형의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영향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강조....(24쪽)


일본의 지형은 사람들을 서로 격리시켜, 서로의 접촉을 제약하는 기능도 했다.

...산과 산림이 많은 것...긴 거리를 유유히 흘러가는 하천이 없는 것이 교통과 통신을 방해해

중앙집권적인 정치 지배를 곤란하게 했다.

오늘날 일본인이 정치적 일체성을 갖고, 일본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체헙에 깊게 뿌리 박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근대 이전의 대부분의 시기를 통해 중앙의 권력자의 지배가 미친 것은 수도와 인접한 근교 뿐이고...(25쪽)

...일본인이라는 관념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지형에 대처하려고 급조해낸 정체성이다. (26쪽)


(정치제도)

근대의 혁명적인 대변동을 견디며 살아남은 왕실은 세계에서도 몇 안되지만,

일본의 일왕가는 근대변혁기에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그 중의 하나이다...

역대 일왕은 토착적인 神道의 전통에 따라 사제로서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해왔으나,

정치에 관해서는 다른 위정자들이 일왕의 이름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처음 등장한 것은 조정과 관계가 두터운 귀족이었고,

이어서 등장한 것은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기반을 가진 무사계급이었다.

...(귀족보다 위에 서는) 막부라 불리는 최초의 군사정부가....1180년대...

이 정부를 이끈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통치자로서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왕을 설득하여 쇼군(將軍, 征夷大將軍)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27쪽)


전쟁의 기술은 시대와 더불어 변해갔고, 활과 화살에서 칼로, 이어서 16세기에는 철포로 바뀌었다.

게다가 지방에 기반을 둔 무사계급은..넓게 농촌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었다.

16세기 중반경 정치권력이 극도로 분산되는 상황....

저마다 동원가능한 상당한 병력을 거느린 영주인 다이묘(大名)가 지배하는 수백의 정치단위, 번(藩, 영지)으로 분할되었다.

일본의 근대 정치사는 이들 영주 중 소수가 나머지를 제압해서 수하로 만들며 통일해가는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28쪽)


(근대이전 해외와의 접촉)

근대가 시작되기 전 몇 세기 동안 아시아 지배자들 사이의 관계는,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朝貢제도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형성....

바다라는 천혜의 장애물 덕분에 일본의 지배자들은 한국과 베트남의 지배자들보다 중국의 조공 요구에 완강히 저항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19세기까지는 일본의 지배자들에게 조공제도를 대신하는 지역적인 제도를 만들어내서 실시하는 것도 힘들었다.

일본과 아시아의 인접국들 사이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 일본 근대혁명의 중요한 한 가지 요인은

서양의 외교 및 국제관계의 제도를 수용하고, 서양의 논리에 근거해서 제국주의적인 지정학적 게임을 해야겠다고

재빨리 결정하나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0쪽)


불교와 유교는 종래부터 있어왔던 新道의 종교적 관행과도 공존...

신도의 의식과 신앙은 인간사회와 자연계에서 순수함과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했다.

그런 가미(신격을 가진 다양한 존재, 神) 이외에도 강대한 정치권력을 가진 씨족이 수호하는 신이 이었지만,

그런 씨족 중에서도 가장 강대했던 것이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新)의 직계라고 주장하는 일왕가였다. (33쪽)


1800년 시점에서 일본열도의 인구는 약 3,000만명으로, 그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1900년에 이르러 일본은 이미 다면적인 혁명을 경험하고,

구미 이외의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입헌 국가가 되었다.

구미 이외에서는 유일한 제국주의 세력이기도 했고,

최초로 그리고 그 당시에는 유일하게 산업혁명을 경험한 국가였다.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