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박규리 시인의 '치자꽃 설화'를 읽으며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3. 1. 10. 14:07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 2004)  -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
절집을 숱하게 다녔다지만 나는 저 풍경을 보지는 못하였다. 
수행도 사람의 일이라 사랑이 관여치 못할 바는 없겠다지만
산중 수행승을 만나고 빗길을 떠나는 여인의 뒷모습과 
독송으로 마음자리를 다잡는 스님의 잿빛 등짝은 
그것이 관념으로 묘사될지언정 현실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다.
꼭 결혼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 그 시절을 비껴서 이 시를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글쎄다, 수행에 들어선 스님에게 남아있는 눈물은 무슨 의미이고,
쑥국새는 짝을 찾음이 분명하지만,
돌계단 치자꽃 아래의 한동안은 빗물에 씻겨나갈 것이다.
젖은 어깨로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그이는
화자의 눈에만 그러할 것이라는데 나의 편향적 확신은 굳어있다.
괜시리 '버림받은' 여자가 될 이유가 없을 화자는
그것이 '버림'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잘 짜여진 '설화'는 '수덕사의 여승' (송춘희 노래)에서 보이는
그것과 사뭇 닮아있다. 
 

 입추 (入秋)  - 박규리

 

신새벽에 요사채 방문을 열고 밖에 섰다

승복 한 벌 가을비에 젖고 있다

두 철째 묵언중인 젊은 납자 (衲子)

가슴에 다 마르지 못한 것들 저리 많았는가

속살 베이도록 단단히 풀기 먹였는데

잠시 고개 돌리면

이 산중에서도 젖고 또 젖었다

두어라, 서둘러 걷을 일 없다

빳빳이 세웠던 풀기 다 빠져야

곧추선 허리 풀린다

그리운 이름 한 사발쯤 가슴으로 젖어야

이 겨울, 다시 눈 푸르게 넘기지 않으련

비 들이친다 문 닫아라!

 

**

빳빳한 풀기가 빠지고,

젊은 납자의 곧추선 허리가 풀려야 하고,

가을비에 그리운 이름  가슴에 젖어야,

 

눈 푸르게 겨울을 넘긴다는,

이 상징의 혼재를 어찌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