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향 시집, 안경 너머의 안녕, 미학
어머니의 등에는
늘 연탄 한 장이 타고 있다
난닝구 구멍마다 붉은 맨살이 올라와
듬성듬성 화근내를 내며
땀 절은 소금 간으로
밭고랑 하나를 금세 삶아버린다.
연탄의 구멍이 목숨이라는 듯
한 번씩 허리를 들어
바람통에 빠끔히 열어주지만
구멍마다 새는 가스는
뼛속까지 노랗게 어지럽기만 하다.
시린 오금을 펼 때마다
햇살 주름은 하얗게 타고
몸빼 바지 발목까지
어느새 한 움큼 고인 저녁 연탄재
어머니 난닝구 화덕엔
호미 구멍마다 양대 콩이 열린다.
*
자잘한 일상, 삶의 한 순간을 스쳐가는 사람의 일생이
난닝구 한 장과 연탄 화덕으로 겹쳐지며 살아난다.
구들장 찢어진 틈으로 노오란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 국물로 목숨을 건사했던 기억이 없던들,
연탄화덕의 불구녕을 몰래열고는
달고나 쪽자를 했던 기억이 없던들,
이 시의 이해는 더욱 힘들었을 터이다.
늘 낡은 런닝 한 장으로 들일을 하셨을
어떤 어머니의 등짝이,
대개는 아버지의 런닝을 물려 입었을,
동자바지의 노동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이 시는 그저 산비탈 콩밭을 그린 그림 한 장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시절,
연탄으로 대표되는 산업사회의 초입과
농경사회의 마지막을
이 시편은 잔잔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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