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제향 -' 어머니의 난닝구'를 읽고서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3. 2. 20. 23:03

이제향 시집, 안경 너머의 안녕, 미학

 

어머니의 등에는
늘 연탄 한 장이 타고 있다
난닝구 구멍마다 붉은 맨살이 올라와
듬성듬성 화근내를 내며
땀 절은 소금 간으로
밭고랑 하나를 금세 삶아버린다.
 
연탄의 구멍이 목숨이라는 듯
한 번씩 허리를 들어
바람통에 빠끔히 열어주지만 
구멍마다 새는 가스는
뼛속까지 노랗게 어지럽기만 하다.
 
시린 오금을 펼 때마다
햇살 주름은 하얗게 타고
몸빼 바지 발목까지
어느새 한 움큼 고인 저녁 연탄재
어머니 난닝구 화덕엔
호미 구멍마다 양대 콩이 열린다.

 

*

자잘한 일상, 삶의 한 순간을 스쳐가는 사람의 일생이

난닝구 한 장과 연탄 화덕으로 겹쳐지며 살아난다.

 

구들장 찢어진 틈으로 노오란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 국물로 목숨을 건사했던 기억이 없던들,

연탄화덕의 불구녕을 몰래열고는

달고나 쪽자를 했던 기억이 없던들,

이 시의 이해는 더욱 힘들었을 터이다.

 

늘 낡은 런닝 한 장으로 들일을 하셨을 

어떤 어머니의 등짝이,

대개는 아버지의 런닝을 물려 입었을,

동자바지의 노동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이 시는 그저 산비탈 콩밭을 그린 그림 한 장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시절,

연탄으로 대표되는 산업사회의 초입과

농경사회의 마지막을 

이 시편은 잔잔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