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밥숟갈의 무게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2. 5. 9. 01:44

고등학교 2학년 때이던가, 유신탑의 그림자가 드리운 진해중앙도서관의 1층 서가에서 문예중앙 여름호에 실린 이외수의 중편 <장수하늘소>를 읽었었다. 작품은 재미있었지만 표지의 대파꽃 그림이 더 기억에 남는다. B급 작가라는, 무협지의 신선한 변주같은 느낌이었다.

고려원판 장수하늘소, 당시 고려원에서는 많은 책은 내었고, 나는 지방에서 통신판매로 꽤 많은 책을 구입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대학에 들어서는 선배들이 복사본으로 돌려 읽던 <대설 남>을 읽으며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노래를 불렀었다. 일테면 A급 시인이었던 셈이다. 젊은 날의 그는. (젊은 날 그의 시에 대해 관념성을 일찌기 읽어 내셨던 분들도 계셨다.)

 

며칠을 두고 두 분 모두 타계하셨다. 한 분은 (원래도 미술 쪽으로도 한 가닥 하셨던 분이였으니) 감성과 소통의 A급 소설가로, 다른 한 분은 (김형수 선생님의 표현대로) '닻을 내리지 못하는' '동요하는 배'가 되어 C급 시인으로 가셨다. (사실 존칭도 아깝다. 노욕에 가까운 그이의 말로는.)

 

밥숟갈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딱히 노년도 아니었던 시절에) 노년으로 핑계하는 흔들림과 동요는 서글프다. 그런 동요를 인정하는 것은 친일파를 처단치 못한 역사의 치부책의 흔적일 것이다. 

그것은 차마 용서받거나 위로받지 못한다. 그의 젊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