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진해 벚꽃장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2. 3. 30. 20:32

올해도 누군가가 벚꽃 소식을 전해왔다.

군항제는 열리지 않는다. 올해도.

 

오래전 군항제사진

 

벚꽃이 무슨 죄가 있겠냐만, 그 분분한 흩날림은

일본 군국주의의 깃발 아래 산화하는 제국의 젊음을 미화하거나 

역시나 닮음이라고는 어딘지도 모를 '성웅' 이순신과

'일본국 만주군관' 박정희를 동일시하려는 의도의 '군항제'-1963년인가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하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한

(독재자에게는 4월 28일 이순신 탄신일에는 이미 벚꽃이 져버린다는 게 한스러웠을 것이다.)

벚꽃은 그 벚꽃을 대하는 봄의 사람에게 죄가 없지는 않다.

 

우리들은 군항제란 뜻모를 이름보다 벚꽃장이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불렀다.

하기사 육대 (지금은 어딘가로 옮겨간, 육군대학교) 근방에

사계절 깜빡이불로 찬란했던 벚꽃장 카바레라고 있기는 했다.

난전의 온갖 장사꾼과 음식 냄새로 기억되는 '벚꽃장'은 

누군가의 표현대로 '벗고 장'이라고 지갑을 몽땅 털리고 벗고 나온다는

전국에서 몰려든 장사꾼들의 야바위와 바가지의 한 마당이었다.

 

꽃이야 이뻐지, 이쁘지 않은 꽃이 있을란가?

그렇다고 그 꽃 아래의 생활이 이쁘거나 할 거란 생각은 애초에 글렀다.

진해 인구 수 보다 많은 외지인들이 찾아들 즈음이면 시내는 길 막히고 차 밀리고 사람에게 떠밀리며

턱없는 바가지에 물가가 오르곤 하는 열병같은 난전이었다. 

꽉막힌 군사도시에 그나마의 숨통이라면 숨통이기도 했겠지만.

 

러일전쟁 승전탑이 있었다던 탑산 (제황산 공원) 뒷길 동물원으로 내려가는 길의 벚꽃과

전범기를 닮은 중원로타리 시계탑과 북원로타리의 충무동상 (그게 우리나라 첫 충무 동상이긴 했다) 앞이거나

(김구선생 친필시비는 또다른 독재자 이승만의 한 마디에

북원로타리에서 쫒겨나듯 남원로타리에 옮겨져있다. 그나마 웃머리는 깨진 자국이 선연하다.)

공설 운동장 참새구이 포장마차 길을 따라서의 벚꽃은

내가 가진 몇 안되는 기억이다. 벚꽃에 관한 한.

요컨대 군항제와 벚꽃장은 어긋지게 짜맞추어져 덧칠된 왜색과 친일의 유산이란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색의 사쿠라가 왕벚으로 포장되어 친일파들이 벚꽃을 당당히 즐기게 된 부분이거나,

친일의 독재자 박정희가 벚꽃 심기 운동을 지시했다는 부분이거나 간에)

 

 

솔직해지자.

벚꽃장은 벚꽃장대로, 군항제는 군항제대로 가야지, 꼭 그렇게 가겠다면.

성질같으면 벚꽃을 뽑아버리겠지만, 생나무를 뽑을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사람들이 지나간 후

떨어져 밟혀진 여름날의 버찌가 만드는 시멘트 돌가루 바닥의 흔적들.

그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벚꽃장의 씁쓸한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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