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 7 물가와 유통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7. 1. 12:46

산티아고 이야기에서 스페인 물가를 빼놓고는, 나의 경우라면, 순례길 여행의 순간순간을 합리적으로 설명해낼 재간이 없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는지-영성을 제쳐놓더라도-와 알베르게에서의 식사준비와 힘들 때 들렀던 카페에서의 생맥주 한 잔과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가능했는지를.

 

들리는 마을 마을 마다에는 적당한 숫자의 가게가 있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영업자의 숫자가 가게의 영업이익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만치 적었다.

우리라면 아마도 길거리 대부분을 자영업자들이 진을 쳤을 것이다. 흡사 절집 아랫말의 식당가처럼.

한 둘의 가게이고 보면 독점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생맥주와 커피는 2000원대였다.

그것도 순례객들이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안주삼아 먹는 것도 가능한데도.

(순례꾼들이 오래 앉아 있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슈퍼에서의 장보기는 또 어떠했나?

1인당 식대 13000원 이하로 하루거리를 준비할 수 있었다. 돼지고기값. 빵과 다른 유제품 값, 간단한 채소류를 포함해서이다.

특히 우유값은 - 생우유가 아니긴 하지만 - 1 유로 선이었다.

 

스페인의 물가에서 나는 한국 유통업의 구조를 생각해본다.

노출되지 않고 불로소득을 취하고 있는. 그 5-6단계의 다단계에서 기생하는 유통의 구조를.

스페인과 같은 생산자-소비자를 바로 연결하는 전국단위의 합리적 유통망 (슈퍼마켓)이 이러한 생활 저물가를 가능케 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중소기업 중심론이나 최저임금에 관한 최근의 논란들은 유통의 혁명을 전제하지 않고는 모두 누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적 규모의 단일적 유통망과 생산자 소비자를 바로 연결하는 1단계 유통망의 구성을 생각해본다.

편의점 - 구멍가게의 변형일지도 - 같은 소매 구조가 아니라.

그러자면 자영업자는 그 수를 줄이거나 도태시켜  이 유통망의 내부/하부로 편제되어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권리금이란 것은 정당히 내어야 할 세금을 사익으로 편취한 것이고,

 프랜차이즈 자영업은 기술적 진입장벽을 낮추어 자영업자를 노동자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익집단에 불과할 수 있는, 거간꾼에 불과하다고 보여지는, 농협수협 등도 해체되어야하고, 국내 유통망도 정비돼야 할 것이다.


당장 힘들다고 현실을 감안한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결국 쓰러지는 건 대다수 노동자다.

정작으로 정치적인 선택이란 오늘의 고통을 내일로 전가하지 않고 당당히 결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외국인 수입노동자로 인한 국내 노동자와의 임금경쟁? - 차라리 임금의 후진국화가 적절한 표현이겠지만-에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


P/S

조금 큰 동네에는 전국적 체인의 수퍼가 2-3개 있었다.

이 수퍼는 생산자들이 직접 이메일로 납품 단가를 제시하고 납품하게 되며 (가격이 납품 결정의 최우선이다)

체인 수퍼는 이를 전국망을 통해 공급한다. 우리 식의 다단계 유통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수퍼 체인 자체가 공급망을 구축하여 생산과 소비를 직접 연결하는 셈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 같은 경우 골목 상권 다 죽는다고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골목 상권을 위해서 유통업자의 배를 불리고, 생활 노동자를 고물가로 내모는 것은 어떠한가?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로 보였다. 나의 눈에 산티아고는 그런 고민을 종내 할 수 밖에 없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