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탄생, 크리스토퍼 브룩 (3) – 은수사와 공주 수도사의 삶은 모두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삶의 표현
유럽을 만든 은둔자들
수도원의 탄생, 크리스토퍼 브룩 지음, 이한우 옮김, 청년사 -
제4장 수도원 생활: 노동과 기도
(89쪽) 식사시간으로 배당된 짧은 시간을 뺀 나머지 일과는 공동기도나 개인기도, 그리고 노동으로 크게 나뉘어졌다. 베네딕트는 이렇게 기록했다. “나태함은 영혼의 적이다. 따라서 형제들은 정해진 시간에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정해진 시간에는 종교서를 읽는 것에 몰두해야 한다.” (48장) 분명한 사실은 베네딕트가 공도예배, 개인기도, 독서, 노동이라는 네 요소가 대체로 균형을 이루는 일과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노동에 관한 세 가지 가능한 접근방식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을 요리나 설거지처럼 꼭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을 지루함과 나태함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시간 보내기로 볼 수도 있다. 또는 노동을 신성한 일로, 즉 숭고한 목적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앞서 인용한 구절은 나태함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동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노동이라는 말에는 변화 없이 획일적인 일과가 뒤따르는 (90쪽) 심한 단조로움을 막기 위해 낮시간 동안에 어떤 변화를 주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베네딕트는 노동을 꼭 해야만 하는 일로 정의했다…. 하지만 베네딕트는 수도사들이 완전히 자급자족 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생활에 필수적인 일을 해결하면서 수도원 일과에 유익한 변화요소를 가미하려는 것에 있었다.
(92쪽) 분명한 점은 공동기도와 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독서나 노동과 같은 인간의 일이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중세의 수도원 (94쪽) 생활을 이해하는 한 줄기 빛이기도 하다.
(95쪽) 전례의 영향은 11세기와 12세기의 건축물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부자나 빈자나 모두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했다. 농부는 작은 집이나 방이 하나밖에 없는 비좁은 오두막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부유한 도시 거주자나 기사는 조금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방 두 개가 고작이었다.
…언뜻 봐도 복잡한 수도원의 건물은 그 당시의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궁전을 (왕들이 신하들보다 사생활의 영역이 많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들이 있던) 많이 닮은 것처럼 보인다.
… 수도원 안에서 살림을 꾸려 나가는 중심지는 회랑 回廊이었다. …이곳은 분명 일을 하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의식 집행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대규모 축일에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줄을 지어 오른쪽 방향으로 회랑을 돌았다. 날마다 수도사들은 교회와 수도사실 chapter house (수도사들이 그곳에서 규약의 한 장 a chapter를 들었으므로)을 오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양심적으로 고백했고, 형식적인 일들을 처리했다. …그들은 식사시간에는 대체로 요란하게 꾸며진 세수대에 모였다. 의식상 손을 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서 식당에서 정성이 가득 담긴 감사의 기도가… 식사에 못지않게 의식이 강조되었다. 일과의 의식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생활을 위해 꼭 처리해야만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 배정된 시간을 매우 줄어들어 있었다.
(98쪽) 면도시간이 되면 (시종장의 감독하의 한) 수도사는 회랑에 수도사들을 두 줄로 세웠다. 한 줄은 수염을 깎아주는 줄이었고, 다른 한 줄은 수염을 깎이는 줄이었다. 수도사들은 면도를 하면서 시편을 계속 낭송했다. 수도사들은 보통 한 주에 한 번 면도를 했다. …목욕에 관해서…”별로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1년에 단 두 번, 즉 성탄절과 부활절 전에만 목욕을 했기 때문이다.
(99쪽) 또 다른 중요한 관리인인… 자선품 분배 관리인은 수도원 주변의 빈민 구제를 담당했다. 수도원 수입의 대부분이 수도원의 영향권에 있는 교구 주민들의 십일조로 충당되었음을 감안하고, 그 십일조가 가난한 사람의 구제뿐 아니라 성직자들을 부양하는 데에도 쓰였음을 감안…
(106쪽) 가경자 페트루스는 편지 곳곳에서 은수자의 삶과 공주 수도사의 삶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공통점에서 대해서도 적으면서 이해심을 표했다. 본질적으로 그는 두 종류의 삶 모두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삶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편지에서 그는 기도, 묵상, 영적 독서, 일이라는 은수자 삶의 네 가지 요소들을 개괄한다. 은수자는 나무를 심을 수 없고, 식물에 물을 줄 수 없으며, 다른 농사일에도 종사할 수 없다. (은수자는 자신의 암자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은수자는 책을 베끼는 보다 유익한 일 (quod est utilius)에 종사한다. 그렇게 하면서 은수자는 정신의 열매들을 기르고, 숭고한 영혼의 양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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