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만든 은둔자들
수도원의 탄생, 크리스토퍼 브룩 지음, 이한우 옮김, 청년사 -
제5장 은수사회 隱修士會
(108쪽) 클뤼니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의식 儀式과 관련한 활동과 공동체를 위한 노동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규칙적이고 위엄 넘치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사생활이 없었고 개인의 영적 발전을 위한 공간이나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고독하게 살아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은둔처들이 수도원 주변의 언덕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11세기... 은수사 부흥운동이 시작된 곳도 바로 이탈리아이다.
(111쪽) 이 운도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였던 성 페트루스 다미아누스에 관해... 은수자이자 지식인이었다.... 상당히 세련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있었고, 또 (10세기 이후의 이탈리아에서는) 고전학문의 토대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학교들도 남아있었다.
(114쪽) 다미아누스는 은수자의 암자를 일시적인 물건들을 영원한 물건들로 바꾸어주는 가게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는 은수자의 암자를 하느님의 진영에 있는 병사의 천막에 비유했고, 또 죄는 사라지고 죽은 자가 부활하는 예수님의 무덤에 비유하기도 했다.
페트루스 다미아누스의 저작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수도사의 이상에 대한 지식을, 좁은 의미에서 보면 은수자의 이상에 대한 지식을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시키는데에 기여했고...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가지 퍼뜨리는 데에 기여했다. 다미아누스에게 (115쪽) 일부 영감을 얻었거나 혹은 다른 이탈리아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얻은 국지적인 운동들이 북유럽... 1070년대 말과 1080년대 초, 몰렘 수도원의 로베르는 프랑스 동부 콜랑 숲 속에서 수도사와 은수자들을 이끌었다. 로베르는 여기에서의 생각과 이상을 기반으로 하여 후에 시토 수도회를 창설했다.
카르투지오회를 조직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형식으로 갖춘 수도회로 만든 사람은 1110년부터 1136년까지 라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부원장으로 있던 귀고 1세였다.... 귀고는 관례를 작성했고 규칙의 토대를 확고히... 무엇보다 예배의식을 많이 축소... 개인적인 기도, 명상, 영적 독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마련되었다.
(116쪽) 은수자들이 했던 독특한 작업은 책을 베끼는 것이었다. 이 작업으로 카르투지오회의 소수도원들은 멋진 도서관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무리를 형성하기는 했지만 은수자에 가까웠고, 회랑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지어진 암자 속에서 생활했다.
(121쪽) 은수자의 이상은 은수자 이상과는 정반대의 생활방식인 공주생활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상황에서 부활하였다. 이러한 역설적인 사실은 독일의 에버바흐 수도원이나 프로방스 지방의 세낭크 수도원의 공동침실 같은 건물에서... 시토 수도회의 전통을 따른... 공동 침실이라... 그 당시에는 이곳에 짚을 넣은 요와 다소 거치 침구가 두 줄로 깔려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가서야 공동침실의 벽에 나무 널빤지가 붙여졌다. 또한 공동 침실에 칸막이를 설치해 작은 침실로 나눈 것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 그러나 11세기와 12세기에는 수도원에서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세계에서도 사생활 공간, 혹은 작은 방을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122쪽) 은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산과 숲의 고요와 적막이었다. 아름다운 (123쪽) 자연이 은수자들을 유혹하거나 미혹시켰다면 은수자들은 분명 그런 장소를 거부했을 것이다.... (124쪽) 이탈리아에 있는 은둔지들은 언덕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하늘에 더 가까이 있다는 상징성 때문...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러한 곳에... 사람들의 거주지를 벗어나서 살겠다는, 이를테면 시나이 산이나 호렙 Horeb 산 위에 있고 싶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이 사막 교부들의 위업에 영적 감화를 받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