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시코쿠 오헨로 순례길

시코쿠 오헨로길 3 - 일본의 절집 예절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9. 5. 16. 01:01

어머니는 절집 마당에 들어서면 늘 손을 씻으셨다.

우리네 절집의 초입에는 으레히 약수물이 졸졸거리는 절구통이거나 물확이 놓여있기 마련이어서,

이래저래 절집을 들어서면 손을 씻기 마련이었다. 목을 축이는 것은 덤이고.

 

그런 풍경은 일본의 절집에서도 보게된다.

 

우리와 달리 일주문이 있는 경우는 드물고, 또 사천왕을 두루 모신 곳도 드물다.

인왕문에는 두 분의 천왕을 모시고 커다란 짚신짝을 걸어두었다. 아마도 홍법대사의 순례길 상징이지 싶다.

 

산문을 올라 이제 경내로 들어서면 우선 정수(淨水)에 손을 씻는다. 그 물바가지나 또 걸려있는 수건이 늘상 깨끗한 상태가 아닐지라도.

대부분 졸졸거리는 상태로 마실 수 있기는 하겠지만 입을 헹구어내는 정도일 것이다.

 

연후에 종루에 가서 타종을 한다. 불자가 왔음을 알리는 셈이다.

우리의 절집에서는 타종은 스님의 고유권한?인 것에 비추어 본다면,

이제 절집을 찾은 길손의 알림을 타종으로 시작한다는 점은 새로웠다.

 

다음은 본당을 찾는다. 본당은 본존불을 모신 곳이다.

마당에는 일본삼나무가 심겨있거나 히노키가 심겨있다.

뜰앞에 잣나무라고 일갈했던 선승의 화두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향과 초를 사르고, 준비된 오사메후다 라는 종이에 본인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봉납함에 넣기도 한다. 

본당에도 혹달린 종북이 높이 걸려있어 줄을 조심스레 당겨 은은히 소리를 울려준다.

 

대부분은 법당 문이 잠겨있고, 또 내부가 아주 작은 봉창문으로 보여도

본존불은 저 멀리의 닷집? 아래에 또 가려져 있다.

다만 주련에 씌여진 글귀로서 이 금당의 본존불이 누구시라 알 뿐이다.

 

 

 

본당 예불을 마치면 대사당 (홍법대사를 모신 당우이다)을 찾는다.

일본 오헨로 상들은 이곳을 오히려 더 공경하는 느낌이다.

그곳에서 반야심경을 독송한 다음에야 (함께 독송하는 순례꾼들이 많다.)

붓으로 순례지의 표식과 붉은 인주 도장을 받는 납경소를 들러 마무리를 한다.

(대부분 주지 스님이 이 일을 한다. 알바생을 쓰는 절간도 있지만.)

 

 

우리 절집에서 천원 한 장 쓰길 아까워했던 기억의 나로서는,

물경 3천원의 납경비는 늘 고민거리였다.

지혜가 옅은 자는 세속의 물증에 기대어 세파를 건너는 법이라서

나의 그릇은 꼭 그만큼이었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고, 달을 보았으면 손가락을 잊으면 될 터인데.